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징검다리.2 / 박형동

花雲(화운) 2011. 12. 8. 09:08


징검다리.2/ 박형동

 


밟히거라

모서리가 다 닳도록

더 밟히거라

 

차가운 물 속

저 밑바닥에 뿌리를 박고

거센 물살에도 흔들리지 말아라

오랜 세원에도 무너지지 말아라

 

가난을 벗어날 길도 없는 사람들

무거운 짐을 지고 기우뚱거리며

이 샛강을 건너가야 하리니

 

너마저 흔들린다면

너마져 무너져버린다면

우린 누굴 믿고 머나먼 길을 걸어가랴

우린 누굴 딛고 슬픈 세상을 건너가랴

 

지친 두 다리로

징검징검 건널 수 있도록

보폭만큼 뚝뚝 떨어져서

네 자리를 지켜라

 

천근만근 짐을 지고 가는

하찮은 사람들의 발길에 밟힌다는 것이

얼마나 낮아지는 일이고

얼마나 참기 어려운 일이냐만

 

그래도 밟히거라

물살이 흐르고 세월이 무너져도

말없이 자리를 지키는 그날까지는

힘겨운 짐꾼들이 뚜벅뚜벅

물살 여울지는 샛강을 건너야 하리니.

 


* emfah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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