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봄 편지/ 윤석정

花雲(화운) 2011. 7. 26. 09:26


봄 편지/ 윤석정

 


느닷없이 배달된 상자를 풀어보니

텃밭에서 자란 봄이 옹기종기

내게 반질반질한 연둣빛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 한 움큼 들어 올리니

상자에 동봉된 어머니 얼굴이 나왔다

 

텃밭에 무더기로 봄이 왔다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한 글자의 퇴고도 없이

어머니는 빼곡하게 편지를 썼다

반나절 이렇게 편지만 썼을 것이다

 

통화 몇 초로 전할 수 없던 봄

내가 인연에게 밤새 편지를 쓴다한들

내 언어로는 완연한 봄을 쓸 수 없다

 

지금쯤 어머니는 텃밭에 글자들을 심어두고

여름편지를 쓸 준비에 바쁠 것이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고 주근깨 같은 글자들이

봄볕에 그을린 어머니 얼굴에 박혀있을 것이다

 


* 2005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페라 미용실'이 있음

   pungkyung@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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