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편지/ 윤석정
느닷없이 배달된 상자를 풀어보니
텃밭에서 자란 봄이 옹기종기
내게 반질반질한 연둣빛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 한 움큼 들어 올리니
상자에 동봉된 어머니 얼굴이 나왔다
텃밭에 무더기로 봄이 왔다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한 글자의 퇴고도 없이
어머니는 빼곡하게 편지를 썼다
반나절 이렇게 편지만 썼을 것이다
통화 몇 초로 전할 수 없던 봄
내가 인연에게 밤새 편지를 쓴다한들
내 언어로는 완연한 봄을 쓸 수 없다
지금쯤 어머니는 텃밭에 글자들을 심어두고
여름편지를 쓸 준비에 바쁠 것이다
그렇게 봄날은 간다고 주근깨 같은 글자들이
봄볕에 그을린 어머니 얼굴에 박혀있을 것이다
* 2005년 경향신문으로 등단. 시집으로 '오페라 미용실'이 있음
pungkyung@empal.com
'花雲의 배움터 > 詩와의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나무의 말/ 문인선 (0) | 2011.07.28 |
---|---|
기억하지 않네/ 장영희 (0) | 2011.07.27 |
살풀이/ 김소해 (0) | 2011.07.25 |
자산어보에 비치는 달빛/ 박옥위 (0) | 2011.07.25 |
솔개/조경진 (0) | 2011.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