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당신을 지우며/ 김종철

花雲(화운) 2009. 3. 7. 16:14


당신을 지우며/ 김종철

 


큰형님이 떠났습니다

갑작스럼 부음처럼 슬픔도 갑작스레

왔다 갔습니다.

남은 내가 한 일은

휴대폰 번호를 지우는 것

이름과 숫자를 지우고 내친김에

향간과 어머니와 초또마을 절구통과

떡시루와 용접기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말까지도!

그쯤이면 다 지워졌을 성 싶습니다

지상에서의 이별은

성호를 긋듯 당신을 차례로 지우는 일

또 내가 떠날 때까지

썩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해설>

형님이 돌아가신 날 시인은 형님의 휴대폰 번호를 지운다. 지워지는 건 휴대폰 번호만이 아니다. 고향마을과 유년의 추억도 함께 지워진다. 그리고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까지

도 함께 지워진다. 그것이 지상의 이별이다. 그러나 시인은 마음 속에서는 지우지 않는다. 내가 떠날 때까지 썩지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깊은 울림, 절묘한 직관이 돋보이는 시다. 읽으면 읽을 수록 감동이 더한다.

허연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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