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우며/ 김종철
큰형님이 떠났습니다
갑작스럼 부음처럼 슬픔도 갑작스레
왔다 갔습니다.
남은 내가 한 일은
휴대폰 번호를 지우는 것
이름과 숫자를 지우고 내친김에
향간과 어머니와 초또마을 절구통과
떡시루와 용접기
형만 한 아우가 없다는 말까지도!
그쯤이면 다 지워졌을 성 싶습니다
지상에서의 이별은
성호를 긋듯 당신을 차례로 지우는 일
또 내가 떠날 때까지
썩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해설>
형님이 돌아가신 날 시인은 형님의 휴대폰 번호를 지운다. 지워지는 건 휴대폰 번호만이 아니다. 고향마을과 유년의 추억도 함께 지워진다. 그리고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까지
도 함께 지워진다. 그것이 지상의 이별이다. 그러나 시인은 마음 속에서는 지우지 않는다. 내가 떠날 때까지 썩지않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깊은 울림, 절묘한 직관이 돋보이는 시다. 읽으면 읽을 수록 감동이 더한다.
허연 기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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