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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못 보는 농부

앞 못 보는 농부 앞 못 보는 농부에게는 논밭도 있고 집 앞을 흐르는 실개천도 있다 손으로 더듬어 고추도 심고 콩을 심어서 주렁주렁 익어가는 결실을 꿈꾼다 앞 못 보는 농부의 머릿속에는 산으로 가는 오솔길도 보이고 마을로 내려가는 논둑 길 지도가 펼쳐져 있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몸으로 땔감 주워 군불을 지피고 손주들 웃음소리 떠올리며 익어가는 보리가 춤추는 것을 본다 봄부터 여름 내내 허리가 휘도록 농사를 지어서 풍성한 가을걷이 하게 된 농부에게 무엇이 더 부족한 게 있을까 코끝에 흐르는 감자 익는 냄새가 행복하기만 한 촌로에게는 평생을 지켜 온 아들의 손이 깊게 파인 주름을 섬섬히 만져주는 것으로 족하기만 하다 2008.06.12

비 오던 날

비 오던 날 추적추적 땅으로 떨어져서 흩어지는 마음이 수 만 갈래 떠내려가는 덧없음을 어이 잡을 수 있으리요만 가슴 한구석 살아가야 하는 이유 때문에 멈추지 않는 눈물 굽이치며 실개천 건너서 커다란 강으로 흘러가야만 하리 닫혀버린 상흔이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설움으로 쏟아지고 나면 질펀하게 퍼붓고 난 후 푸르러진 하늘 위에 새털구름 띄워 놓고 얼마나 맑은 얼굴로 웃어줄 수 있으려나 2008.06.13

니가 날 사랑하니?/<상사화>

니가 날 사랑하니? 두 손을 맞잡고 걸을 때에는 끝이 없는 동행인 줄 알지만 미미한 바람결에도 파문이 일어 흔들리는 마음 믿지 못해 돌을 던져보는 어리석음으로 잡은 손을 놓치지 않을 수 있겠니? 심장이 찢어질 것 같아도 연모하는 마음 잃지 않으며 보이지 않는 것일지라도 끝까지 바라봄으로 기뻐할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면서… 목숨을 버린다 해도 아깝지 않을 만큼 니가 날 사랑하니? 2008.06.12 시집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