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나무들의 겨울 밤은 길기도 하지
아침에 눈을 뜨듯
아지랑이 따라 깨어나
연한 채색 옷 차려 입고
열병 앓듯 기웃거리지만
꽃을 피워 애틋한 사랑도 이룬다
서산을 넘는 노을 빛에
붉게 물드는 가슴
가랑비에 젖어 들면
하나씩 옷을 벗어
무심한 잠에 들어야 한다
하룻밤에 기와집을 짓고
정든 이 남겨두고 먼 길 떠나도
너무 혹독해서 포근한
눈꽃 속에 발을 묻고
긴 잠에 드는 것은 허락된 평안이다
꿈길이 아무리 멀어도
돌아오는 것은 찰나,
스쳐간 날들 만큼
쌓여간 나이테 속에
간직하고 싶은 순간마저 아까운 밤
나의 하룻밤은 왜 그리 짧은 건지
2020.06.01
우리시 11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