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8

하룻밤

花雲(화운) 2020. 6. 1. 15:24

하룻밤

 

 

나무들의 겨울 밤은 길기도 하지

 

아침에 눈을 뜨듯

아지랑이 따라 깨어나

연한 채색 옷 차려 입고

열병 앓듯 기웃거리지만

꽃을 피워 애틋한 사랑도 이룬다

 

서산을 넘는 노을 빛에

붉게 물드는 가슴

가랑비에 젖어 들면

하나씩 옷을 벗어

무심한 잠에 들어야 한다

 

하룻밤에 기와집을 짓고

정든 이 남겨두고 먼 길 떠나도

너무 혹독해서 포근한

눈꽃 속에 발을 묻고

긴 잠에 드는 것은 허락된 평안이다

 

꿈길이 아무리 멀어도

돌아오는 것은 찰나,

스쳐간 날들 만큼

쌓여간 나이테 속에

간직하고 싶은 순간마저 아까운 밤

 

나의 하룻밤은 왜 그리 짧은 건지

 

 

2020.06.01

우리시 1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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