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詩 창작론

이미지에 대하여 1/ 시인 고재종

花雲(화운) 2010. 1. 5. 10:57


이미지에 대하여 1/ 시인 고재종


1. 이미지의 정의 
  이미지(심상)란 원래 심리학적인 용어로 ‘머리에 떠오른 것으로서 감각적 성질을 지닌 것’인데, 문학에서는 주로 신체적 지각, 기억, 공상, 상상, 꿈, 열병 등에 의해 만들어져 비유 등 수사적 기법으로 표현된 것으로 곧 ‘언어로 만들어진 그림’을 뜻한다.
이미지(묘사-회화성)는 리듬(운율-음악성)과 함께 시의 대표적 구성원리로서 사물에 대한 감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킨다. 20세기에 들어 ‘듣는 것’보다 ‘보는 것’ 중심으로 된 시각형 문화 속에서 이미지야말로 시의 완성도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라는 학설이 생길 정도이다.
  문학적 용법으로서의 이미지의 정의는 다음 세 가지인데, 그 첫 번째는 축어적 묘사건, 인유건, 또 비유에 사용된 유추건 문학작품 속에서 언급되는 감각. 지각의 모든 대상과 특질을 가르킨다.

順伊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順伊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장만영의<달. 포도. 잎사귀>

  위 시에서 “벌레 우는 고풍한 뜰”, “동해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밤”, “포도넝쿨 밑에 어린 잎새” “달빛” 등등은 어느 것 하나 이미지 아닌 것이 없다. 청각, 시각, 촉각의 예민한 반응에 의한 이미지들이 그림을 보는 듯 선연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2연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라는 행은 감각되거나 지각되는 대상이고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라는 다음 행은 그 대상의 특질을 가리키므로 이 역시 이미지이며, 4연도 마찬가지다.
  다만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라는 이미지 중에 대상의 특질을 가르키는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라는 행은 시적화자의 본질로 날카롭게 진입하는 직관적 상상력에 의해 나포된 이미지로, 동해바다처럼 푸르고 깊은 가을밤에 익어가는 탐스런 포도와 그 달고 싱그러운 향기가 온 뜨락에 퍼질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두 번째, 이미지는 더욱 좁은 의미로 시각적 대상과 장면의 묘사만을 가르킨다.

헬리콥터가 떠간다/ 철뚝길 연변으론/ 저녁 먹고 나와 있는 아이들이 서 있다/
누군가 담배를 태는 것 같다/ 헬리콥터 여운이 띄엄하다/

김매던 사람들이 제 집으로 들어간다/ 고무신짝 끄는 소리가 난다/
디젤 기관차 기적이 서서히 꺼진다
-김종삼의 <문장수업>

  이 시는 시적 ‘문장수업’에서 그야말로 가장 기초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묘사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저녁 무렵의 철뚝길 연변 풍경을 스케치 한 것인데, 철뚝길 위를 떠가는 헬리콥터며, 그걸 바라보는 아이들이며, 누군가 담배를 태우는 것처럼 띄엄띄엄한 헬리콥터의 여운이며, 그 여운 따라 김매고 귀가하는 사람들이며, 때마침 역사에 들어온 디젤 기관차의 바람빠지는 소리가 있다. 이런 풍경의 사실적 묘사만으로도 저녁 휴식이 찾아드는 하나의 한가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시인의 능력은 이미지의 조작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세 번째, 이미지는 가장 일반적으로 비유의 보조관념, 특히 은유와 직유의 보조관념을 의미한다.

진주장터 생어물전에는/ 바닷밑이 갈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잔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 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 가명/ 신새벽에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박재삼의 <추억에서>

  이 시에서 “울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發하는 눈깔들”은 울엄매의 “속절없이/ 은잔만큼 손 안 닿는 한”이란 원관념에 대한 보조관념이다. 마찬가지로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 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도 “울엄매의 마음”이란 원관념을 수식하는 보조관념이다. 모두 은유법인데, 물론 그 안에는 “은잔만큼”이랄지 “옹기들 같이”랄지 하는 직유법이 액자처럼 들어있다. 바로 이처럼 직유나 은유의 보조관념을 이미지라고 하는 것은 이미지에 대한 협의적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