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詩 창작론

이미지에 대하여 2/ 시인 고재종

花雲(화운) 2010. 1. 5. 11:00


이미지에 대하여 2/ 시인 고재종


2. 이미지와 경험, 이미지와 상상력, 이미지와 사물 
  이미지란 경험 사실의 감각화 또는 육화(肉化)이다. 시인은 전달하고 싶은 관념이나 실제경험 또는 상상적 체험들을 미학적으로 그리고 호소력 있는 형태로 형상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찾는다. 이 수단이 이미지다. 그런데 이미지 역할은 시작품에 있어서 신선감, 강렬성, 환기력 등을 주는 데 있다.

어느 먼―곳의 그리운 소식이기에/ 이 한밤 소리없이 흩날리느뇨.//
처마 끝에 호롱불 여위어가며/ 서글픈 옛 자췬 양 흰눈이 내려//
하이얀 입김 절로 가슴이 메어/ 마음 허공에 등불을 켜고/ 내 홀로 밤 깊어 뜰에 나리면//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희미한 눈발/ 이는 어느 잃어진 추억의 조각이기에/

싸늘한 追悔 이리 기쁘게 설레이느뇨.//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호올로 찬란한 의상을 하고/ 흰눈은 내려 내려서 쌓여/
내 슬픔 그 위에 고이 서리다.
-김광균의 <雪夜>

  이 시는 눈 오는 밤의 추회(追悔)를 아주 감상적으로 노래한 시다. 먼 곳의 그리운 소식인 양 한밤 소리없이 눈이 흩날린다. 그 눈은 또 처마 끝에 호롱불 야위어 가듯 서글픈 옛 자취인 양 내린다. 그 눈으로 탄식의 마음이 된 시적 화자는 혼자 한밤의 뜨락에 나선다. 이런 화자의 마음은 잃어버린 추억을 간직하고 있고, 그 추억이 한 줄기 빛도 향기도 없이 찬란한 의상을 한 눈으로 바뀌어, 지금 화자의 슬픔 위로 자꾸 서린다는 것이다. 너무도 소녀적이고 감상적인 시의 전개다.
  그런데 한 행으로 독립된 4연을 보라.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 이는 눈 내리는 모습을 그처럼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로 감각화시킨 것인데, 추회라는 단어로 보아 아마도 이는 시적 화자의 옛 애인에 대한 경험 사실이 그처럼 육화(肉化)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시인은 전달하고 싶은 관념이나 실제경험 또는 상상적 체험들을 미학적으로 그리고 호소력 있는 형태로 형상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찾는다 했는데, 이 시에선 바로 4연의 이미지가 그 수단이 되어 자칫 소녀적 감상의 시 정도로 떨어져버릴 수 있는 시를 신선하고도 강렬한 환기력을 갖게 한다. 사실 4연이 없으면 이 시는 그냥 탄식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서 이미지와 상상력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용은 상상력(imagination)이다. 상상의 초보단계는 과거에 보고 듣고 겪었던 사물의 이미지를 마음속에서 다시 생각해내는 일이다. 이것을 기억이라 하는데 그러나 과거의 기억은 일종의 감각적 모상(模像)일 뿐으로 이것을 ‘재생적 상상’이라 부를 수 있다.→그런데 지난날에 겪었던 이미지들 가운데서 선택된 여러 가지 요소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을 ‘생산적 상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생산적 상상의 더 높은 단계가 ‘창조적 상상’인데 서로 다르거나 관계가 먼 여러 가지 이미지들을 선택하여 거기에서 어떤 유사점을 찾아내 결합함으로써 원래의 모습이나 의미 그대로가 아닌 새로운 이미지들의 통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정신활동에 작용하는 것이 바로 ‘관념적 연상’이다. 그런데 이런 창조적 상상에 의한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는 단순한 기계적 결합의 결과물이 아니라 시인의 정서와 사상이 들어가게 마련이므로 실제로 경험된 이미지들이 시인의 정서와 사상에 의한 해석(解析)과 선별(選別). 조합(組合)을 거쳐 새로운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나 힐끗 보았네/ 냇갈에서 목욕하는 여자들을//
구름 낀 달밤이었지/ 구름 터진 사이로/언뜻, 달의 얼굴 내민 순간/
물푸레나무 잎새가/ 얼른, 달의 얼굴 가리는 순간//
나 힐끗 보았네/ 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神出의 고향을//
내 마음의 천둥 번개 쳐서는/ 세상 일체를 감전시키는 그 순간//
때마침 어디 딴 세상에서인 듯한/ 풍덩거리는 여자들의/ 참을 수 없는 키득거림이여//
때마침 어디 마을에선/ 훅, 끼치는 밤꽃 향기가/ 밀려왔던가 말았던가
-고재종의<그 희고 둥근 세계>

이 시는 표면적으로는 어리던 날 마을 밤냇가에서 목욕하는 여인들을 훔쳐보았던 기억, 곧 재생적 상상력에서 출발한 시다. 그런데 그 여인들의 목욕을 아주 신선하고 강렬하게 환기시키기 위하여 구름 끼고 구름 터지는 달밤과, 그 사이에 힐끗 본 여인들의 희고 둥근 엉덩이와, 그걸 또 오래 볼 수 없도록 얼른 가려버리는 물푸레나무 잎새 등을 동원하여 이미지의 통일체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생산적 상상력의 단계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적 화자는 그 모습을 훔쳐본 순간 가슴과 영혼에 천둥번개가 치고 나아가 세상전체가 아득해버릴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는 그걸 “그 희고 둥근 여자들의/ 그 희고 풍성한/ 모든 목숨과 神出의 고향”이라고 명명하며, 순식간에 관념적 연상에 의한 창조적 상상의 단계로 올라서 버린다. 여기까지 사실 시는 끝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싱그러운 신성의 공간에 대한 경험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그 선녀들은 다시 목욕하며 키득거리며 장난하는 지상의 여인들로 내려오고, 그 여인을 훔쳐보는 악동들이나 혹은 청년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이 수컷의 정액냄새가 나는 “밤꽃 향기”로 환치되어 달밤을 덮는다.

다음은 이미지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이미지를 한자로 심상(心象)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를테면 ‘눈감으면 떠오르는 고향’ 같은 것이 이미지의 전형적인 예이다. 마음속에 떠오른 그림을 다시 글자로 옮겨놓으면 문학적 이미지이다. 그러므로 시적 이미지는 모든 사물들을 문자적 표현으로 옮겨놓되 거기에 창조적 상상을 가미한 것이다.

그래서 시는 반드시 사물의 이미지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자유’라는 관념을 시로 나타낼 때는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간다든지 하는 식의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어 그 그림을 통한 연상 작용에 의해 자유라는 관념이 독자의 마음속에 환기되도록 해야 한다. 마치 서양에서 지금도 ‘마음’을 나타낼 땐 하트모양(심장)을 그리듯이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떤 정서나 사상 곧 관념을 환기하게 하는 데 사용된 일련의 사물(사건, 상황도 포함)을 ‘객관적 상관물’이라고 한다. 가령 “산지기 외딴집 눈먼 처녀”(박목월, <윤사월>)의 이미지들은 외로움의 정서를 환기시키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處暑 지나고/ 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
-김춘수의 <處暑 지나고>

이 시는 하늘에서 우레가 사라지고 개미가 땅 속 창문을 흙으로 바르는 절기인 처서 지나고 난 다음, 어느 밤에 퉁겨진 시적화자의 외로운 심경을 표현한 것이다. 먼저 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 처서가 지났는데도 장대비가 내리면 안 된다. 봄에 오는 보슬비는 생명의 귀환이라도 되는 듯 보슬보슬 내리는 비지만, 처서 지난 뒤의 비는 모든 것이 가랑가랑 가버리고 꺼져버릴 듯한 가랑비여야 한다. 그 가랑비에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그 가랑비에 바늘잎 솔잎이 젖는다고 하면 안 된다. 처서 지나면 뜨락의 오동나무나 태산목 등 잎 넓은 잎들이 먼저 계절을 알고 떠나갈 준비를 한다. 커다란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을 담고 있는 소녀를 보면 더욱 가슴이 미어지듯, 제일 먼저 지상을 하직할 커다란 잎새가 가랑비에 젖어야만 더 처량하고 서럽게 느껴진다.

이런 밤에 가랑비로 환치된 시적화자의 마음은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아득한 외로움으로 반추된다. 그러면서 역시 태산목 너른 잎으로 환치된 자기 마음을 스스로 젖게 한다. 그러다간 새벽녘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 것을 보고야 말 정도로 외로움의 신경선을 아주 팽팽하게 당긴다. 이 시에서 어쨌든 가랑비, 태산목 커다란 잎, 메아리, 귀뚜라미 무릎 등은 처서 지난 어느 밤의 시적 화자의 외로움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된 객관적 상관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