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달 불러 외롭고 쓸쓸함 달래네 - 한훤당 김굉필
<書懷,서회>
處獨居閒絶往還 (처독거한절왕한) 홀로 한가롭게 살아가니 오가는 사람 없고
只呼明月照孤寒 (지호명월조고한) 다만 밝은 달 불러 외롭고 쓸쓸함 달래네.
憑君莫問生涯事 (빙군막문생애사) 그대는 내 생애 일일랑 묻지를 마오.
萬頃煙波數疊山 (만경연파수첩산) 만이랑 안개 낀 물결과 첩첩한 산이라오.
寒暄堂 金宏弼 (1454~1504)
- 조선
- 김종직의 제자요, 조광조의 스승이다. 조선 초기 사림파의 도통을 이어준 인물로서
소학의 실천규범을 엄격하게 지켜 선비상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 연산군 때 무오사화에 김종직의 일파로 지목되어 평안도 희천(熙川)에 유배되었고,
갑자사화에 죽임을 당했으니, 조선 사회에서 선비가 죄 없이 탄압당하는 사화에
희생된 인물이다.
작품해설
- 첫째 구절은 유배지의 쓸쓸하고 외로운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고향인 성주
에서 멀리 평안도 희천에 죄인의 몸으로 유배되어 있으니 찾아오는 사람 없이
외롭고 적적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처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둘째 구절에서는 밤이면 찾아오는 달을 만나는 광경을 보여준다. 수평적 공간에서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지만 수직적 공간에서는 밤마다 달을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누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오직 자기만을 찾아와 마주하는 친구요 서로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는 달 뿐이라는 것이다.
- 달은 자기 마음의 거울일 수도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비춰볼 수 있는 거울이라면,
달에 비친 자신과 대화를 하는 것이 된다.
-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에서는 달을 보고 대화하면서 하늘로 향하던 시선을 돌려 다시
수평선 너머에 있는 옛 친구를 생각하는 것 같다. 멀리서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
친구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아예 묻지도 말라고 당부한다.
- 자신의 저지가 너무 막막하고 암담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불안함을 토로하고 있다.
당시의 정국은 간신배들이 지조있는 선비들을 낫으로 풀베듯이 베어버리고 있으니,
생사가 갈라지는 위기가 너무 급박하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이런
절망적 위기에서 선비의 확고한 사생관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법이 아내랴.
- 죽음을 앞에 두고도 고향에 돌아가듯 편안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선비의 모습이다.
오직 "생명을 버리고서라도 의리를 붙잡겠다"는 것이 선비의 신몀이다. 그러니 언제
죽음이 닥쳐올 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인 상황에서 선비의 모범인 김굉필의 자세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선비의 올곧은 신념과 확고한 사생관도 최후의 순간에 분명한 결단으로 드러나는
것이지, 선비라고 하여 한 인간으로서 두려움과 불안감이 전혀 없는 철인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
'花雲의 배움터 > 漢詩 1'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대에게 묻노라 처음 어디서 왔는가 - 화담 서경덕 (0) | 2018.02.12 |
---|---|
물과 사람이 어찌 다르다 하랴 - 정암 조광조 (0) | 2018.02.12 |
한가로이 취해서 온갖 시름 잊어야지 - 양촌 권근 (0) | 2018.02.11 |
높이 올라도 최고봉엔 오르지 말아야지 - 삼봉 정도전 (0) | 2018.02.11 |
대숲으로 평상 옮겨 누워서 책 보네 - 야은 이길재 (0) | 2018.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