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은 오히려 음을 억제하누나 - 포은 정몽주
<冬至吟>
造化無偏氣 (조화무편기) 조화에는 치우친 기가 없지만
聖人猶抑陰 (성인유억음) 성인은 오히려 음을 억제하누나.
一陽初動處 (일양초동처) 한가닥 양이 처음 움직이는 곳에서
可以驗悟心 (가이험오심) 내 마음을 증험할 수 있겠네.
圃隱 鄭夢周 (1337~1392)
- 고려 말 주자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때 정몽주는 성귬관의 교수로서 주자학의
경전주석으로 학생들을 지도하여 큰 영향을 미쳤다. 당시 성귬관 최고책임자인
대사성 이색은 정몽주의 명석한 성리학적 경전해석에 대해, "정몽주가 이치를
논함은 횡(橫: 현상)으로 말하거나 종(縱: 근원)으로 말하거나 이치에 합당하지
않음이 없으니, 우리나라 이학의 시조로 추대할 만하다."라고 극찾하였다.
작품해설
- 정몽주의 저술은 대부분 소멸되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단편적 글에서 그의 성리학적
이해를 엿볼 수 있는 경우로 동짓날에 읊은 이 시가 있다. 이 시는 문학작품이라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대로 자신의 성리학적 견해를 시의 형식을 빌어서 서술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첫째 구절은 우주의 생성변화로서 '조화'에는 '음'과 '양'의 두 가지 '기'가 동시에
적용한다는 자연의 생성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 세상은 음과 양의 양극적 요소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말한다.
그래서 자연현상에는 '양'과 '음'의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
- 둘째 구절에서는 '음'과 '양'이 서로 의존하고 병행하는 자연 질서와 달리 성인이
제시하는 가르침에서는 '음'이 억제되고 '양'이 높여진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자연의 생성질서와 인간의 가치질서가 다르다는 매우 중요한 판단을 제시하고 있다.
-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두 가지 연관질서가 잇음을 말해준다. 그 하나는 상응구조로서
인간이 자연을 본받아 일치하기를 추구하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상충구조로서 인간이
자연 질서를 이탈하여 독자성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 물론 인간도 자연에 순응하여 '음,양'의 순환 질서를 벗어나지 않고 따라야 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연에 머물지 않고 자연을 넘어서는 독자적 가치
질서를 갖는다는 통찰이 있다. 인간과 사물의 차이를 가장 먼저 분명하게 밝혀준
인물이 순자가 아닐까 한다.
- 정몽주는 바로 이러한 자연질서와 인간규범의 차이를 『주역』에서 찾아내어,
자연질서에서 '음,양'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는 현상과는 뚜렷한 차이를 드러
내는 인간적 가치질서로서 성인의 가르침이 '음'을 억제하고 '양'을 높이는
'억음존양9抑陰尊陽)으로 제시됨으로써, 자연 질서와의 차이를 확인하고 있다.
- 이처럼 '음'과 '양'이 평등하게 작용하여 수평적 상호의존질서를 이루는 자연의
생성작용과는 대조족으로 '양'을 높이고 '음'을 낮추는 수직적 가치질서를 추구
하는 인간 삶의 특성을 제시하였다. 그만큼 '음,양'의 '기'가 실현되는 양상이
자연과 인간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 셋째 구절에서 '동지'날 테양이 가장 짧아졌다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전환의
시기를 한 가닥 '양'이 처음 움직이는 자연의 변화질서를 확인한다.
- 넷째 구절에서는 '양'이 다시 살아나는 자연질서의 전환계기를 인간규범으로
재해석하여, 인간의 마음속에서 '욕망'이 억제되고 '천리(天理)'가 회복되는
도덕적 의미를 제기한다. '동지'의 형상을 지닌 '복(福)'괘에서 문물을 살려내는
하늘의 마음을 읽어내고, 인간의 가치질서 속에서 선을 지향하는 도덕성의 근원을
내 마음에서 확인할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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