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취하여 꽃동산에 누워 강남을 꿈꾸네 - 남호 정지상

花雲(화운) 2018. 2. 9. 19:51


취하여 꽃동산에 누워 강남을 꿈꾸네 - 남호 정지상

<醉後>



桃花紅雨鳥喃喃 (도화홍우조남남)   복사꽃 붉은 비에 새들이 지저귀니

繞屋靑山閒翠嵐 (요옥청산한취람)   집을 둘러싼 청산에 푸른 기운 아른거리네.

一頂烏紗傭不整 (일정오사용불정)   이마에 비스듬한 오사모 게으른 탓이어니

醉眠花塢夢江南 (취면화오몽강남)   취하여 꽃동산에 누워 강남을 꿈구네.


南湖 鄭知常 (?~1135)

- 고려


작품해설

- 정지상이 봄날의 흥취를 읊은 시이다.

- 첫째 구절에서는 봄도 이미 깊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복사꽃이 한창 피었을 때는

   요염한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었는데,이제 꽃비로 흩날려 뜰에 가득 쌓여 있으니,

   여전히 아름답지만 아무리 아름다움도 세월이 가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젖어 있는 아름다움이다.

- 둘째 구절에서는 집 바깥을 둘러보니 신록이 푸르른 산들이 멀고 가깝게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보인다. 꽃은 눈앞에서 화사하게 피어 바람결에 가볍게 하늘거리다가

   또 바람따라 가볍게 흩날려 땅에 덜어지고 있지만, 산은 육중하게 둘러서서 나를

   편안하게 지켜주고 있다.

- 셋째 구절에서는 시인 자신의 편안한 모습을 보여준다. 옷깃을 가다듬고 갓을 반듯

   하게 쓰는 '의관정제'한 엄슥하고 긴장된 모습을 벗어던지고 있다.

- 시인은 왜 이 와창한 봄날 저녁에 이렇게 자신을 풀어놓는 것인가? 이 아름다운 자연,

  이 아름다운 계절에 자신을 통째로 맡기고 안심하는 모습이 아닐까? 이 천지 사이에

   자신을 우쭉하게 세워 자립하는 것이 인간적 품격이지만, 그 품격을 던져두고 이

   계절의 자연 속에 자신을 맡겨 자연 속에 함께 스며들고자 하는 것이라 보인다.

- 넷째 구절에서는 자신을 이 자연 속에 던져둔 모습을 보여준다. 깨어 있을 때의

   모든 자의식과 책임의식을 다 잊어버리고 술에 취해 꽃동산 속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 아무 걱정도 근심도 없고 아무 책임도 의무도 없이 술에 취하고 꽃에 취해서 잠이

   들었으니, 얼마나 행복한 상태일까? 시인은 화사한  복사꽃이 만발한 봄날, 복사꽃

   꽃비가 바람에 흩날리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그 꽃 속으로 들어가서 꽃동산 속에서

   이상향을 찾아낸 것으로 해석된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