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6

손바느질/ 1

花雲(화운) 2015. 1. 20. 18:00

손바느질

 

 

바늘이 헝겊을 만나서 의기양양해졌다

언제나 마음 내키는 대로 불쑥불쑥 들이대지만

쓰다 달다 불평하지 않는 그녀는

속없이 찔러대는 날카로운 공격을

그저 말없이 받아들이기만 한다

마디마디 토막 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한 땀, 한 땀 드러나는

상처가 아프게 자리를 잡는다

서로 맞지 않는 만남이었어도

바닥이 얇은지 두꺼운지 상관하지 않는 행진은

미리 정해놓은 길을 향해 나아갈 뿐

거듭 찔리기만 하는 존재감은

엉킨 실타래를 풀고 나서야 정연한 걸음을 옮긴다

느리고 아둔함 속에서

앞뒤 헤아릴 것 없이 무자비하게

돌진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몸서리나는 통증에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다가

숨 막히게 조여오던 박음질이 멈추면

살에 살을 맞대어 꿰맨 자국이 그림처럼 웃고 있다

발맘발맘 걸어간 발자국 따라

미처 상상할 수 없었던 인내와 헌신이

거친 세월 넘느라 고단해진

손가락 끝에 굳은살로 단단히 박혀있다

 

 

2015.01.18

시집 <엄마는 어땠어요?>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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