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배는 둥글거나 네모난 바탕에 여러가지 무뉘를 수놓아 가슴과 등에 다는 관복의 문장으로
흉매를 관복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단종 때 부터이다. 왕과 왕세자의 곤룡포에는 용문양을 수놓은
흉배를 가슴과, 등, 양어깨에 장식하였는데 이를 보(補)라 하였다. 백관의 상복(常服)인 단령포에는
네모진 흉배를 가슴과 등에 붙였다. 왕과 왕세자의 용문흉배가 5조룡(五爪龍), 4조룡으로 구별되듯이
백관의 흉배도 관품에 따라 문(文)의 구별이 있었으며 여러차례 변경하였다.
대군은 기린, 통도사는 사자, 제군은 백택, 문신 1품은 공작, 2품은 운학, 3품은 백한을 수놓고
무신1, 2품은 호표, 3품은 웅표, 대사헌은 해태로 정하였다.
연산군때는 당하 9품까지 흉배를 붙이도록 하여 사슴, 멧돼지, 아(거위), 기러기등의 문양을 추가하여
품계를 구별하도록 하였다. 영조때는 간략히 하여 당상관은 운학, 당하관은 백한 흉배로 통일하였으며
고종때는 문신당상관은 쌍학, 당하관은 단학 무신 당상관은 쌍호, 당하는 단호를 정하뎌 한말까지 사용했다.
<우리수 사랑회 회원전>
2012년 3월 13일~31일. 운현궁
해태흉배
상상의 동물인 해태는 물의 신수이며 벽사의 상징이다. 힘이 세고 성질이 올곧으며 사악한 자에게 대들고
부정을 물어뜯는다.조선시대 관리들의 비리와 부정을 감찰하고 법을 집행하던 사헌부의 대사헌은
해태를 수놓은 흉배를 단 옷을 입었고 관헌들은 해태의 모습을 장식한 해치관을 썼다.
<우리수 사랑회 박천옥 님 작품>
쌍학흉배
쌍학문 흉배는 당상문관(堂上文官)이 착용하던 것이다. 옅은 청색의 비단바탕에 위쪽에는 구름을,
가운데는 날개를 활짝 편 쌍학이 불로초를 입에 물고 마주보는 모양을, 아래쪽 중심부에는 칠보무늬를,
좌우에는 물결무늬를 수놓았다.
<우리수 사랑회 이해영 님 작품>
쌍호흉배
단학흉배
불노초를 입에 물고 나래를 활짝 편 단학(單鶴)은 덕망 높은 문관의 상징이다.
학의 주변으로 화려한 오색구름이 있고 학의 나래 밑에는 무한(無限)을 뜻하는 파도와 바위,
물방울 등이 수놓아져 있다. 흉배는 조선시대 남자들의 계급장이면서도 아름다운 자수 예술품으로
승화한 여인의 솜씨이다.
<우리수 사랑회 홍종원 님 작품>
문관삼품(文官三品)수탉흉배- 베트남 19C C.E.M. 소장
흉배의 배경이 납사수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데 흔히 밝은 적색을 사용하고 있다.
배경과 수탉, 그리고 대부분의 장식적인 모티브들이 납사수로 수놓아졌으며 수탉 날개의 깃털과 꼬리,
불교의 매듭, 그리고 파도의 띠는 금사를 사용한 징금수로 묘사하였다. 수탉의 몸 전체를 세부적으로
뵤사하기 위해 장식수를 사용하고 다른 많은 모티브들의 윤곽선이 징금수로 뚜렷이 묘사되어 있다.
<권선홍 님 작품>
금수오조원용보(金繡五爪圓龍補)(왕비용)
금수어조원영보(황제용)-창덕궁 소장(고종황제의 1897년 이전)
되도록 원본에 가깝도록 수를 놓으려 노력했으며 대부분의 황제용 용보는 금사만을 이용해 수를 놓았으나
금수어조원용보는 색실을 함께 사용하여 다른 보와 비교될 만한 보라고 생각한다.
<우리수 사랑회 전시회 최미식 님 작품>
쌍학흉배-서민용
봉황흉배(鳳凰胸背)-전화순옹주(傳和順翁主) 유물
봉황흉배는 왕비, 세자빈이 원삼을 착용할 때 가슴과 등에 부착했던 흉배이다.
봉황은 상상의 새로 길상을 뜻하며, 새 중에서 으뜸으로 여겨 왕비, 세자빈 등의 흉배문양으로 사용되었다.
공주는 다산을 의미하는 뜻으로 7마리의 작은 봉황이 수놓인 흉배를 사용하였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서장녀로 어머니는 정빈 이씨이다. 1725년(영조 1년) 2월 18일에 화순옹주로 봉해졌다.
<이연숙 님 작품>
봏황흉배
단학흉배
금수오조원용보
수(壽)자 흉배
원삼용 수자 흉배로써 창덕궁에 소장되어 있는 수본을 참고로 재현했다.
<한상수 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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