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무등을 보며/ 서정주

花雲(화운) 2009. 11. 16. 10:47


 

무등을 보며/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여름 산 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 아래 지란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 수밖에 없다.

목숨이 가다가다 눙울쳐 휘어드는
오후의 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워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러미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불 쑥구렁에 놓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묻혔다고 생각할 일이요,
청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