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사화를 겪은 매화 분재- 이행

花雲(화운) 2018. 8. 2. 17:24

사화를 겪은 매화 분재- 이행

『용재집』권3


生從居士手 (생종거사수)   심거사의 손에 의해 심어졌고

意許虛庵親 (의허허암친)   허암 선생께 가지라 주었었지.

竟作翠軒友 (경작취헌우)   마침내 읍취헌의 벗이 됐으니

自無聲色塵 (자무성색진)   절로 성색의 티끌은 없었구나.

南隣太坦率 (남린태탄솔)   남쪽 이웃이 너무나 탄솔하여

評爾非天眞 (평이비천진)   너를 천진이 아니라 평하였지.

此物閱今夕 (차물열금석)   오늘 저녁 이 물건을 살펴보니

小齋曾一春 (소재증일춘)   작은 서재에 봄기운이 가득하네.


작품해설

시를 주고받으며 남달리 각별한 우정을 나누었던 조선 중기의 시인 이행과 박은은

기이한 모양의 매화 분재에 얽힌 특별한 사연을 남겼다. 이행이 매화 분재를 박은에게

돌려주며 쓴 시의 제목에는 이 매화 분재의 기구한 사연이 담겨 있다.


「 이 매화 분재는 본래 나산의 심거사(沈居士)가 심은 것으로 거사가 일찍이 허암

선생에게 주었고, 선생이 화를 입어 멀리 유배 가게 되자 거사가 선생의 벗 읍취헌

가야공에게 주었다. 금년 봄 가야공이 호해로 떠날 때 이를 용재(容齋. 이행)에게

맡겼는데, 가지와 줄기가 구불구불 서리어 들쭉날쭉 가로 비낀 형상을 하였고,

 나무 가득 꽃이 피면 향기가 몹시 맑소 짙으니, 참으로 일대 기이한 물건이라

하겠다.

무오년(1498) 봄에 화분에 심었고 올 계해년(1503)에 이르기까지 이미 여섯 처례

꽃을 피웠으며, 중구절 사흘 전에 지를 지어 읍취헌에게 돌려주었다. 안선지(安善之)

가 일찍이 이르기를,"이 매화는 기교가 너무 지나치니 아마도 天眞은 아닌 듯하다"

하였기에 아울러 희롱 삼아 언급하였다.」


매화 분재는 기인한 형상만큼 기이한 주인들을 만나 세 사람의 서재로 옳겨가며

여섯 차례 꽃을 피웠다.처음 이 매화나무를 화분에 심은 이는 남산에 사는 심거사

였는데그가 벗 허암 정희양(鄭希良)에게 선물하였다. 정희량이 무어사화를 당하여

의주로 유배될 때 심거사는 이 매화 분재를 정희량의 벗인 박은에게 보냈다.

박은의 서재로 옮겨 와 여러 해를 보낸 매화 분재는 1503년 봄에 박은의 절친한

벗 이행의 서재로 잠시 옮겨졌다.

박은은 1501년(연산군 7년) 23세 때 피직된 이후 경제적,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생활을 하였는데 자연에 묻혀 밤낮으로 술과 시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1503년

에는 어려운 살림을 힘겹게 꾸려가던 아내 신씨마저 2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출생부터 비범했던 이 매화는 정희량의 손을 거텨 박은의 맑고 깨끗한 벗이 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기괴한 형상 때문에 자연스럽지 않다는 안선지의 조롱도 있었지만

최고 상품의 매화 분재임에 틀림없었다. 매화 분재의 주인들인 정희량과 박은은

모두 강개하여 개결한 성품을 지녀, 참으로 매화의 주인으로 어울리는 이들이었다.

이행이 매화 분재를 박은에게 돌려준 다음 해인 1504년 갑자사화 때에 박은은

동래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의금부에 투옥되어 26세의 젊은 나이에 사형을 당했다.

이때 이행 역시 사화에 연루되어 충주로 유재를 갔고, 이어 함안을 거쳐 1506년에는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이 매화 분재가 너무나 기괴하다고 했던 안선지 역시

갑자사화가 일어난 지 넉 달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남산의 심거사, 정희량, 박은, 이행, 다시 박은의 서재로 옮겨 가며 여섯 해 동안

어김없이 맑고 그윽한 꽃망울을 터쯔렸던 이 매화 분재는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만 사화를 겪은 것이 아니라 매화 분재 또한 주인과 더불어 사화를 겪은 셈이니,

기이한 모습만큼이나 기구한 매화의 유전이라 하겠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