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기 시내는 맑고 사방 산은 깊으니- 이숭인
一溪澄淨四山深 (일계징정사산심) 한 줄기 시내는 맑고 산은 깊으니
白日翛然世外心 (백일소연세외심) 세상 밖의 마음이라 한낮에도 그윽하구나.
京國故人安穩未 (경국고인안온미) 서울이라 벗님네 편안히 지내시는가?
因風莫惜報徽音 (인뭄막석보휘음) 인편을 만나거든 소식이나 전해주오.
* 이숭인의 시는 현전하는 『도은집』에는 보이지 않고 권근의 『양촌집』에 부록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작품해설
도은(陶隱) 이숭인(1347~1392)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三隱의 한 사람으로
불린 고려 말 문인이다. 정몽주의 당이라 하여 삭직당하고 멀리 유배되었고, 조선의
개국에 이르러서는 정도전이 보낸 자객에 의해 유배지에서 장살(杖殺)당한 이숭인의
절친한 벗이 바로 조선의 건국 공신으로 조선 초기의 문물제도 정빙 앞장선 권근이었다.
이숭인과 권근, 이 두사람의 운명이 갈리기 전 그들이 보여준 우정의 자취를 좇아 보자.
전원에 물러나 있는 이숭인이 먼저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는 벗 권근에게 시를
부쳐 안부를 묻자 권근이 답장으로 시를 지어 보냈다.두 시가 마치 합주를 하는 듯하다.
차운하여 도은에 부치다- 권근
次韻寄陶隱(차운기도은). 『양촌집』권2
門外黃塵萬丈深 (문외황진만장심) 문 밖에는 누런 먼지 깊이가 만 길이라
春生京國獨傷心 (춘생경국독상심) 서울에 봄이 오나 나 홀로 마음 상하네.
知君白日翛然味 (지운백일소연미) 알겠구나, 그대의 한낮 그윽한 맛
莫向人間玉爾音 (막향인간옥이음) 이곳 속세를 향해서 이야길 말아 주오.
누런 먼지가 만 길이나 뒤덮인 서울이라 봄이 와도 봄을 진정 누릴 길 없는 곳에 권근은
남아 있다. 그런 자신에게 속세 밖 한가로움이 넘쳐나느 시를 벗이 보내왔다. 그래서
권근은 "그대의 한낮 그윽한 맛, 이곳 속세를 향해서 이야길 말아 주오"라고 능청스레
대꾸하고 만다.
한 사람은 관직에 나가고 한 사람은 관직에서 물러나 있어 두 사람의 길이 갈리었어도
서로를 생각하는 변치않은 우정을 엿볼 수 있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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