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산책로/독서이야기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花雲(화운) 2019. 8. 2. 15:33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가갸날. 2018


나혜석

이땅 최초의 여성 동경 유학생이자 서양화가.

수원에서 태어나 1913년 진명여고보를 조졸업하고 도쿄시립여자미술학교에 진학, 여성의 삶을 올죄는 제도와 사회현실에 눈을 뜬다. '사람이 되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던 그는 문필활동을 통해 전통적인 여성관에 도전하고, 3·1운동에 관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결혼 후 더욱 거대한 벽을 절감해야 했던 그에게 꿈도 꾸어보기 어려운 세계일주 여행의 기회가 찾아왔다. 세계여행은 사상적 해방구였던 동시에 나락의 길로 덜어지는 빌미가 되었다. 파리에서 만난 최린과의 연애사건으로 35세의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읽고 혼자의 몸이 되어야 했다.

나혜석은 <이혼고백서>를 발표해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남성이기주의를 고발하는 한편 작가로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사회의 냉대는 그에게서 자립의 기회는 물론 건강마저 앗아가고 만다. 시대와 화합할 수 없었던 불꽃 같은 예술가의 삶은 1948년 무연고 행려병자로서 막을 내린다.


표지글

여류화가 나혜석 씨는 예술의 옹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동서양 각국의 그림을 시찰하고자 오는 22일 밤 10시 5분 차로 경성역을 떠나 1년 반 동안 세계를 일주할 예정으로, 오늘 오전 7시 45분 경부선 열차로 동래 자택을 출발하여 경성에 도착 지금 조선호텔에 체재중인바, 여사는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먼저 노농(勞農)사회주의 공화국 연합인 적색 러시아를 거쳐 장차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오스트리아, 네델란드,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터키, 페르시아, 체코, 태국, 그리스, 미국 등을 순회할 터이라 하며…

《조선일보》 1927.6.21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 찾을 것도, 만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돌아올 것도 없다. 영구히 하자. 과거와 현재가 텅 빈 나는 미래로 나가자. …

4나매 아이들아, 에미를 원망치 말고 사회제도와 도덕과 법률과 인습을 원망하라. 네 에미는 과도기 선각자로 그 운명의 줄에 희생된 자였더니라.

- 나혜석 <신생활에 들면서>에서


차례

소비에트 러시아를 가다

파리에서 스위스로

서양 예술과 나체미: 벨기에와 네델란드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

베를린의 그 새벽

이탈리아 미술을 찾아

도버해협을 건너다

정열의 스페인행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태평양 물결이 뱃머리를 치다


떠나기 전의 말

내게 늘 불안을 주는 네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나. 둘째, 남녀 사이는 어떻게 살아야 평화스럽게 살까. 셋째, 여자의 지위는 어떠한 것인가. 넷째, 그림의 요전은 무엇인가. 이것은 실로 알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나의 견식, 나의 경험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면서도 돌연히 동경 되고 알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나 프랑스 화단을 동경하고, 구미 여자의 활동이 봅고 싶었고, 구미인의 생활을 맛보고 싶었다.

--- 그러나 나는 심기일전의 파동을 금할 수 없었다. 내 일가족을 위하여, 내 자신을 위하여, 내 자식을 위하여, 드디어 떠나기를 결정하였다.


p60   인터라켄과 융푸라우

스위스는 큰 나라 사이에 있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과히 할 일이 없어, 하늘의 은혜를 입은 자연경관을 이용해 수입의 대부분을 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강원도 일대를 세계적 피서지로 만들 필요가 절실히 있다. 동양인은 물론이요, 동양에 거주하는 즉 샹해, 북경, 천진 등지에 있는서양인을 끌 필요가 있다. 그들은 매년 거액을 들여 스이스로 피서를 간다. 강원도에는삼방약수가 있고, 석왕사가 있고, 명사십리 해수욕장이 있고, 내외금강 경승지가 있으니 이렇게 구비한 곳은 세계에 없을 것이다.


p155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에서 《삼천리》1932.1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정화 앞에 섰을 때, 스페인에서 첮개 고야의 무덤과 그가 그린 천정화 앞에 섰을 때, 나에게 희망 이상이 용출하였다. 이와 같아 내가 많은 그림을 본 후의 감상은 두 가지다. 첫째, 그림은 좋다. 둘째, 그림은 어렵다. 내게 이 감상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그림은 늘 수 없으리라고 믿는다.

그 외에 나는 여성인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지금까지는 중성 같았던 것이). 그리고 여성은 위대한 것이요, 행복한 존재임을 깨달았다. 모든 물정이 여성의 지배하에 있는 것을 보았고 알았다. 그리하여 나는 큰 것이 존귀한 동시에 작은 것이 값있는 것으로 보고 싶고, 나뿐 아니라 이것을 모든 조선 사람이 알았으면 싶다.


p168   영국 여성 참정권 운동

팽크허스트(pankhurst)여성 참정권운동연맹 회원이요, 당시 시위 운동의 간부였던 그는 이러한 말은 한다.

"여성은 좋은 의복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줄여 저축하여야 한다. 이것이 여성의 권리를 찾는 운동의 제1조이다." 나는 이 말이 늘 잊히지 아니하였다. 영국 여자들의 앞선 깨달음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p205   나이아가라 폭포

전시관에서 본 활동사진은 워주민의 원시생활 모습을 보여주었다. 백인과 원주민 추장의 딸이 혼인하여 사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연애는 신의 불꽃이다. 모든 것을 미화하고 정화한다. 산문적인 우리에게 시를 준다. 대지에 토목의 싹을 돋게 하는 빔이슬이다. 사람의 혼에 맥박이 뛰게 한다. 인생에 빛을 비추고 희망을 준다. 연애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면 참인생의 혼을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 없다. 그 사람 자신이 인생을 존귀하게 살 수 없다. 아마도 참된 사랑은 영혼만도 육체만도 아니라 영혼과 육체를 아우르며 신과 인간 사이를 왕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