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산책로/독서이야기

정민 선생님이 즐려주는 한시 이야기 (2)

花雲(화운) 2018. 7. 29. 13:45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주) 보림출판사. 2002


P75 새롭게 바라보기

  어떤 사물이 어느 날 갑자기 너무나 낯설게 보이는 수가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보통 때와 달랐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보면 다르게 보인다.

새롭게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물과 비로소 만날 수 있고 시는 이런 만남을 노래한다.

시인은 사물과 새롭게 만나게 해 주는 사람이다.

'쌍관의'(雙關義): 한시에서 하나의 단어를 두 가지 뜻으로 읽는 것.

시인은 늘 사물을 시롭게 태어나게 하는 사람이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서 그

사물을 한 번 더 살펴보게 해 준다. 어느 랄 그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 대화할 수 있게

되면, 사물들은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건네 오기 시작한다. 시는 사물이 속삭여

주는 이야기를 글로 적은 것이다.


P83 의미가 담긴 말

  '정운의'(情韻義): 한시 속에는 어떤 단어 안에 사전에 나오는 의미 외에 다른 뜻이

담긴 말들이 많다. 하나의 단어가 특별한 의미를 답고 반복적으로 노래되다 보니

새로운 뜻을 갖게 된 것이다. 이런 새로운 의미를 '정운의'라고 한다.-- 겉으로 보아

서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물들이 생각의 단계를 거쳐 전혀 다른 의미와 연결된다.


P91 미치지 않으면 안 된다

  위대한 예술은 자기를 잊는 아름다운 몰두 속에서 탄생하는 것이다. 훌륭한 시인은

독자가 뭐라 하든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친다. 우리가 쉽게 읽고 잊어

버리는 작품들 뒤에는 이런 보이지 않는 고통과 노력이 담겨 있다.


P99 시는 그 사람과 같다

  시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속담이 바로 그 말이다.

한자로는 '농가성진(弄假成眞)'이라고 하는데, 뜻 없이 한 말이 말 한 그대로 이루

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말 속에 정령이 살아 숨쉰다고 믿어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P107 치마 위에 쓴 시

  '用事': 다른 사람의 표현이나 앞서 있었던 이야기를 빌려 와서 시 곳에 쓰는 겅우.

말을 하지 않으면서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전달하는 아주 효과적인 표현 방법으로

한시 속에 많이 보인다.


P115 계절이 바뀌는 소리

  시 속에서 시인이 일부러 분명하게 말하지 않을 때가 있다.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읽는 사람은 이렇게도 볼 수 있고 저렇게도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모호성'

이라고 한다. 시 속에서 '모호성'은 독자가 들어갈 빈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시인은 슬쪅 빠져 버리고 독자들이 빈 칸을 채워 넣게 한다.


P125 자연이 주는 선물

  자연은 모든 예술의 영원한 주제다. 자연은 말없는 선생님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 일깨워 주고 자신을 닮으라고 한다.


P133 울림이 있는 말

  때로는 침묵이 웅변보다 더 힘있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직접 말하는 것보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더 좋다. 마음에 고이는 법 없이 생각과 동시에 내뱉어지는 말,

이런 말 속에는 여운이 없다. 들으려 하지 않고 쏟아내기만 하는 말에는 향기가 없다.

말이 많아질 수록 공허감은 커져만 가고 내면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기쁨이 없다.


P141 한 글자의 스승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한 글자가 바뀔 때마다 담긴 뜻이 크게 달라진다.

한 글자가 제대로 놓이면 그 시가 살고, 한 글자가 잘못 높이면 그 시가 죽는다.

훌륭한 시인은 작은 표현 하나가 가져오는 미묘한 차이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옛이야기 속에는 시인이 한 글자를 가지고 스승으로 삼은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P151 간결한 것이 좋다

  말과 글은 다르다. 말로 하면 긴데 글로 쓰면 몇 줄 안 된다. 시는 글을 다시 한 번

압축해 놓은 것이다. 시인은 절대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말을 아낄 수록 여백이

더 넓어진다. 말을 아낄수록 좋은 글, 좋은 시가 된다. 설명하려 들지 말고 단지 보여

주기만 해라.


P158 물총새가 지은 시

  보고 듣는 것이 시인의 눈과 귀를 거치고 나면 모두 시의 재료가 된다. 시 속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고 시인은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P177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는 일이다. 내 집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내 집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한시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바로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게 만드는 힘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