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명시선집 1

山査(산사)꽃/서정주

花雲(화운) 2018. 8. 22. 20:41


山査(산사)꽃/ 서정주


山 보네 山 보네 밤낮 山 보네.

그대와 나 둘이서 바래 보기면

번갈아 보며 보며 쉬기도 할 걸

그대 길이 잠들고 나 홀로 깨여

山 보네 山 보네 두 몫 山 보네.


그대와 나 둘이서 맞추었던 눈

기왕이면 끝까지 버틸 일이지

무엇하려 지긋이 감고 마는다.

그대 감은 눈 우에 청청히 솟는 山

山 보네 나 혼자 두 몫 山 보네.


『미당 서정주 시전집』. 민음사. 1983


작품해설

  위의 작품은 우리의 사랑시 가운데 백미로 꼽을 만한 숨어 있는 수작이다. 박정대의 작품이 청춘의 사랑을 노래한 시라면 미당의 산사꽃은 지긋한 나이에 이르러 경험할 수 있는 사랑의 아픔을 노래한 시이다.

  이 시는 미당이 이순의 나이에 접어들 무렵에 쓴 시이다. 님의 부재를 이 시만큼 절실하게 표현한 작품도 드물다. 사랑하는 사람을 저승으로 보내고 홀로 청청히 솟는 산을 바라보는 쓸쓸한 심회를 이 시의 화자는 "산 보네 산 보네 두 몫 산 보네"."산 보네 나 혼자 두 몫 산 보네"하고 고백한다.

  두 몫을 보다니! 함께 바라보았던 그 눈빛의 빈자리를 이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 감은 눈 우에청청히 솟는 산"에서 보이는 잦아듦과 솟아오름의 대비를 통해 우리는 이 화자의 서러움의 수직적 깊이에 공감하게 된다. 청청히 솟는 산의 여전한 생명감이 소멸의 아픔을 더 극대화하기 때문이다.



시/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엄경희

새움출판사. 2011 

우리는 왜 사랑시에 열광하는가? (P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