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산책로/독서이야기

시/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엄경희 (1)

花雲(화운) 2018. 8. 19. 16:55

시/ 대학생들이 던진 33가지 질문에 답하기- 엄경희

새움출판사. 2011


차례

1 시인의 초상

Ⅱ 독자의 즐거움과 괴로운

Ⅲ 제한 없는 몽상과 사색의 세계

Ⅳ 일상적 말하기 방식과 시인의 말하기 방식의 차이

Ⅴ시적 표현의 재미와 의도 읽기

Ⅵ 시의 혈관에 흐르는 음악 읽기

Ⅶ 그 밖의 질문들


프롤로그- 경험의 시락으로 말 걸기

  하나의 단어, 혹은 하나의 문장이 여러 겹의 의미를 내포할 때이것을 함축이라 할 수 있가.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근본 요인이 여기에 있다. 함축은 즉각적 이해가 불가능함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해석해달라는 전언응 내포한다.

이와 같은 문제 앞에서 우리는 수많은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은 왜 언어의 폭발물을 만들고자 하는가? 내가 그 언어의 폭탄을 해부하여 해석에 도달한다는 것은 어떤 가치가 있는가? 도대체 힘겨운 시 읽기를 감내한 끝에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거기에는 어떤 즐거움이 있는가? 이러한 수많은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이 곧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글은 '시는 왜 어려운가?'라는 근원적 물음을 다시 구체적인 질문으로 쪼개어 답함으로써 '시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구체적 사유와 몽상의 도정을 만들고자 기획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시에 관해 자명하게 받아들여졌던 과거의 전제들을 다시 문제적인 것으로 호출하고자 한다.


P41   어떻게 공감을 자아내는가?

  현대시의 미학도 이러한 흐름에 연류되어 있다. 개별 작품의 수준을 평가하는 데 강조되곤 하는 독자성과 창의성은 다름아닌 개성을 뜻한다. 아무리 멋진 말로 이루어진 시일지라도 정민의 말을 빌자면 "비슷한 것은 가짜다". 진정정이 없

현대시의 미학도 이러한 흐름에 연류되어 있다. 개별 작품의 수준을 평가하는 데 강조되곤 하는 독자성과 창의성은 다름아닌 개성을 뜻한다. 아무리 멋진 말로 이루어진 시일지라도 정민의 말을 빌자면 "비슷한 것은 가짜다". 진정정이 없는 것으로 판정된다. 이로부터 세 가지의 의문이 파생한다.

①무엇이 개성미인가? ②개성미는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가? ③극단적인 개성미가. 다시말해 극단젓인 이질성이 어떻게 보편의 공감을 얻고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는가? 이 세 개의 질문은 개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떻게 소통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P45

  사실 모든 시의 내용 자체는 아주 독특한 소재를 끌어온 경우조차 이 같은 보편성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는다. 시가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담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낯설거나 독특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내용보다는 차라리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시를 제대로 ㅇ릭기위해서는 시인이 어떻게 말하는가에 촉수를 세울 필요가 있다. 시의 말하기 방식은 크게 친숙함을 기반으로 말하기와 친숙함을 배반하는 말하기로 나누어진다. 물론 둘 다 개성미가 있어야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P117   류시화 시를 좋아하는 게 왜 문제인가?

  문제는 여기에 있다. 류시화 시를 좋아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류시화 시만 좋아하는 게 문제다. 시에 대한 단순.소작한 그러나 강력한 편견이 이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견은 그야말로 주옥같은 명작들을 일상에서 밀어내는배타성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때 독자는 인간의삶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지, 인간의 진실이무엇인지, 세계가 얼마나기만적인지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즉 "모든 고달픔을거짓괸 싸구려 감상으로 치장"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사실 이생에서 거짓된 싸구려 감상 따위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거의 없다. 인식의 확장과 갱신은 자기 갱신을 의미하며 이는 삶은 갱신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통속적  감상에 묶여 있는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하는 방법은 새로은 진리를 향해 과감하게 자신을 열오놓는 데서 시작한다.


P122   시의 깊이란 무엇인가?

  언어의 깊이는 상상의 깊이이며 샹각의 깊이다. 고뇌가 없는 얕은 생각은 얕은 언어로 표현된다. 닳아빠진 진부하고 상투적인 언어, 인간늬 복잡한 내면을 단순화시키는 발상, 혹은 부질없는 수사로 치장한 표현들, 주제는 단순한데 복잡한 기교로 난해성과 장식성만 증폭시킨 구성들, 시인 혼자만 도취해 있는 감정의 분춘들, 얄팍하고도 저금한 감상성, 설명을 통해 호소하는 문장들, 상처와 고통의 표출을 낭만적 시심으로 착각한 자폐적 나르시시즘, 옹색하고 왜소한 생각의 둘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스타일, 눈물을 강요하는 문장들, 자의식도 없이 낡은 진실을 재생산하는 관성적 태도, 부질없는 장광설, 시각매체에서 함부로 도용해온 이미지들, 다른 시인과 변별되지 않는 그 모든 것들, 이 모두가 깊이를 확보하지 못한 경우와 관련한다.


P133   자유로운 발설은 시가 될 수 없는가?

  시적 분출은 일상적 분출과는 반대되는 방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분노와 슬픔과 외로움과 기쁨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시인은 분출하는 데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분출하는 방식에 몰두한다. 그 방식은 일차적으로 가급적 감정의 낭비를 통제하고 그것을 내면화하는 데 있다. 내면에 응결된 감정을 최소한의 언어로 되살려내는 것이 시 쓰기의 근본 태도이다. 이로부터 미감이 생겨난다. 여기에는 감정의 소란스러움과 과잉과 구질구질한 신파를 정화해가는 쾌감이 내포되어 있다. 시인은 군더더기를 잘라내고 언어의 밀도를 최대화하여 대상의 본질을 고스란히 되살려내고자 한다. 시에서 절제미가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P143

  시의 언어는 긴장감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긴 호흠으로 이루어진 시를 써본다는 것은 시인으로서는 도전이며, 모험이다. 그 버거움 속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이끌고 간다는 것은 언어와의 고된 싸움을 감행하는 일이다. 우리 시에서 長詩의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 이유는언어의 긴장감을 끝끝내 유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P149   이성적 사유는 시가 될 둣 없는가?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꿈속을 헤매는 자가 시인은 아니다. 진지한 사유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좋은 시는 태어나지 못한다. 직관과 감성의 발동도 평소 해왔던 깊이 있는 생각과 연동되는 것이다. 깊이 있는 생각이란 삶의 다양한 국면을 경험하고 관찰하고 느끼고 때로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것을 달리 생각해보는 부단한 의식작용이 동반되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모든 시가 정감으로 가득한 서정성으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P159   예쁜 말로 이루어진 게 시 아닌가?

  삶의 방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내포한다. 시인의 조뇌는 삶의 다양한 국면과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시는  이 모두에게 개방되어 있는 장르이다. 그렇다변 시가 추구하는 바도 다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막연한 아름다움(?)에 시를 가두어놓는 것은 복잡한 세계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삶의 방식이 다양하듯이, 시 또한 그 다양한 방식과 호흡하는 장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적 아름다움은 한 마디로 말해 '긴장 tension'을 의미한다. 긴장을 상실한 언어는 연과 행갈이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엄밀하게 말해서 시라 할 수 없다. 시적 긴장은 감정의 무차별한 배설이 아니라 그것을 적절하게 절제하는 데서 얻어진다. 말을 적게 하고도 그 뜻이 풍부함으로 넘쳐날 수 있다면 그것은 시의 妙(묘)에 다다른 말의 진경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표현된 말들이 일으키는 마문의 힘이다. 그 파문의 힘이 문면에 드러나지 않은 침묵까지도 능숙하게 경영할 때 시다운 시가 탄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