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산책로/독서이야기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1)

花雲(화운) 2018. 8. 15. 14:15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태학사. 2000


책머리에

  "연암의 글은 한 군데 못질한 흔덕이 업슨데도 꽉 짜여져 빈틈이 없다. 그의 글은 난공불락의 성체다. 방심하고 돌진한 장수는 도처에서 복병과 만나고 미로와 만나 손 한번 써도지 못하고 주저앉고 만다."(1992년 7월 27일 메모)

"서늘함은 사마천을 닮았고 넉살 좋음은 장자에게서 배운 솜씨다. 소동파의 늘청스러움, 한유의 깐깐함도 있다. 불가에 빠진 사람인가 싶어 보면 어느새 노장으로 압도하고, 다시금 유자의 근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다."(1997년 6월 20일 메모)

그의 글에서 중세가 힘을 잃고, 근대는 제자리를 잡지 못해 어수선하던 그 시대의 풍경을 보았다. 그럼에도 여태 쩌렁쩌렁한 울림이 가시지 않는 맗은 음성을 들었다. 오늘에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생취(生趣), 현상의 저편을 투시하는 형형한 눈빛을 보았다.


  300년 전의 지성이 이무 死文化왼 한자의 숲을 뚜벅뚜먹 걸어나와, 타성에 적은 내 뒤통수를 죽비로 내려지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한 편 한 편의 글은 연암과 만나 나눈 대화곡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연암은 그의 글에서 '상우천고(尙友千古)'란 현재에 벗이 없어 답답해서 하는 넋두리라고 한 바 있지만, 반대로 연암과의 대화는 내게 이런 맛난 만남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하였다. 연암은 가도가도 난공불락이다. 나는 그 성 밑 자락을 공연히 낡은 사다리 하나 들고서 이리저리 기웃거려본 것일 뿐이다.


차례

첫 번째 이야기/ 이미지는 살아았다. 코끼리의 기호학

두 번째 이야기/ 까마귀의 날갯빛

세 번째 이야기/ 중간은 어디인가?

네 번째 이야기/ 눈 뜬 장님

다섯 번째 이야기/ 물을 잊은 물고기

여섯 번재 이야기/ 文心과 文情

일곱 번째 이야기/ 눈 속의 잣나무, 寫生과 寫意

여덟 번째 이야기/ 심사(心似)와 현사(形似

아홉 번째 이야기/ 그때의 지금인 옛날

열 번째 이야기/ 시인의 입냄새

열한 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예법은 시골에 있다.

열두 번째 이야기/ 새롭고도 예롭게

열세 번째 이야기/ 속 빈 강정

열네 번째 이야기/ 글쓰기와 병법

열다섯 번째 이야기/ 생각의 집, 나를 어디서 찾을까?

열여섯 번째 이야기/ 스님! 무엇을 봅니까?

열일곱 번째 이야기/ 지황탕(地黃湯) 위의 거품

열여덟 번째 이야기/ 돌에 새긴 이름

열아홉 번째 이야기/ 요동벌의 한 울음

스무 번쩨 이야기/ 제2의 나를 찾아서

스물한 번째 이야기/ 갈림길의 뒷 표정

스물두 번째 이야기/ 한여름 밤 이야기

스물세 번째 이야기/ 뒷골목의 등불

스물네 번째 이야기/ 혼자하는 쌍륙 놀이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


P20

  물상의 세계는 햇볕에 비친 까마귀의 날갯빛과도 같아 잡아 가두려고 하면 금세 달아나버린다. 이미지는 살아있다. 내 손끝이나 눈길이 닿을 때마다 그것들은 경련한다. 살아있는 이미지들 속에서만이 삶의 정신은 빛을 발한다. 화석화된 이미지는 더 이상 이미지일 수가 없다. 이것이 ㅋ끼리를 앞에 세워 좋고 연암이 21세기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이다.


P43

  "... 대저 萬物의 情이나 人倫의 전함 같은 것은 그렇지가 않다네. 합하면 떨어지게 마련이고, 이루고 나면 무너지며, 모가 나면 깎익, 높으면 구설이 있게 되며, 有爲하면 공격을 받고, 어질면 도모함을 받으며, 못나면 속임을 당하고 마니, 어찌 페단 면하기를 기필할 수 있겠는가? 슬프다. 너희들은 이를 기억해 두어라! 그것은 오직 道德의 고장에서만 가능한 일임을 말이다"


  내가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이 텅비어 고요한 사람은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고, 눈과 귀만을 빋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자세할 수록 더더욱 병통이 되는 것임을.


P56

  '명심자'는 속된 생각을 들이지 않고 이목에 현혹되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지닌 사람이다. 이데 반해 '신이목자'는 제 눈으로 보고 제 귀로 들은 것만을 신뢰하고, 직접 보고 듣지 못한 것은 도무지 믿으려 들지 않다가 결국 그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마는 사람이다.... 그럴진대 나는 내 눈과 귀를 경계해야 하리라. 내 마음을 우선 다스려야 하리라. 내 마음에서 눈과 귀가 일으키는 병통을 걷어내야 하리라. 이러한 깨달음을 가지고 나는 다시 돌아가 내 앞 시내의 물소리를 다시 들어보겠다. 내 마음에 따라 온갖 빛깔ㄹ소리를 다시 들어보겠다. 내 마음을 텅 비우면 그 소리조차 지월질 것인지를 시험해보겠다. 그리고 이 깨달음으로 제 눈과 귀의 총명을 믿고서 스스로 처세에 능란하다고 믿는, 마침내 그로 인해 제 발등을 찍고 마는 자들을 경계하겠다.


P71

  무엇보다 자기화할 수 있는 거리가 필요하다. 이를 달리 말해 '박이약지(博而約之)'라 한다. 제아무리 폭넓은 섭렵도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널리 읽어라. 그렇지만 그것을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시켜라. 요점을 잡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가? 눈으로 보아서는 안되고 마음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이 집중을 이 글에서는 '約'이란 말로 설명했다. '博'에서 '約'으로 집약되어 하나의 정점에서 그것은 '悟'의 단계로 변화한다. 폭넓은 독서가 하나의 초점으로 집약되어 마침내 오성(悟性)을 열어주는 주체적 각성으로 변모할 때 그것은 창조의 원동력이 된다.


P86

  우주라는 기호를, 만물이라는 텍스트를 어떻게 읽어야 좋을까?연암은 이 <종북소선자서(鍾北小選自序)>에서 그 방법은 성색정경(聲色情境)이란 네 항목에 담아 이야기 한다.

聲; 글에는 그 배면에서 울려나오는 소리가 있어야 한다.... 좋은 글에는 소리가 있다.

     행간으로 울려오는 소리가 있다. 체취가 느껴지는 육성이 있다.

色: 글에는 또 빛깔이 있어야 한다.감춤으로써 더 드러나는 아름다움, 또는 드러냄으로써

     더 환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글이 의미를 드러내는 것도 이와 같다.

情: 글의 정이란 무엇인가? 내가 내 감정을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대신 이야기 해준다.

     내가 말하고 보여 주는 거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일 뿐인데, 어째서 그것들 위에는

     내 情의 무늬가 아로새겨지는가? 사물은 깨끗이 닦아논 거울이구나.

境: 글에는 境도 있다. 먼 물을 그릴 때는 물렬을 그리지 말아라. 파도가 업어서가 아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먼 산을 그릴 때는 나무를 그리면 안된다. 나무가 없어서가

     아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境이란 무엇인가? 화가의 주관적 情이 세계의 객관적

     物과 만나는 접점에서 빚어지는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어떤 경계이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 그맂 않고 그리기. 이것이 글의 境이다. 한 마디 말로 열 마디 웅변을 대신하게 해주는 힘, 이것이 글의 境이다. 사물과 만나 그 의미를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 聲色情境은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니가. 그것은 오히려 사물들 속에 녹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