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홍랑, 최경창

花雲(화운) 2018. 8. 7. 18:00


헤어지며 주다- 최경창

贈別(증별). 『고죽유고』



玉頰雙啼出鳳城 (옥협쌍제출봉성)   고운 뺨에 두 줄기 눈물 흘리며 봉성을 나서니

曉鶯千囀爲離情 (효앵천전위리정)   이별하는 마음에 샙벽 꾀꼬리도 저리 우는가?

羅衫寶馬汀關外 (라삼보마정관외)   비단 적삼에 고운 말 타고 강 건너갈 때

草色迢迢送獨行 (초색초초송독행)   풀빛만 아스라이 홀로 가는 그대 전송하겠지.


相看脉脉贈幽蘭 (상간맥맥증유란)   말없이 바라보며 그윽한 난초를 주노라

此去天涯幾日還 (차거천애기일환)   이제 하늘 끝으로 떠나면 어느 날에나 돌아올까?

莫唱咸關舊時曲 (막창함관구시곡)   함관령에 올라 옛 노래를 부르지 마시로.

至今雲雨暗靑山 (지금운우암청산)   지금까지도 비구름에 청산이 어둡나니.


작품해설

전라남도 영암에는 삼당시인의 한 사람인 최경창과 홍랑의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죽(孤쥭竹) 최경창은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그림, 악기 연주, 활쏘기 등 재주가 많았다.

1568년 과거에 합격한 최경창은 5년 후인 1573년 함경도 경성에 북해평사로 부임하였다.

이때 나이 34세로 기생 홍랑을 만나 깊이 사랑아였으나 다음 해 서울로 돌아가면서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함경도와 평안도 사람들은 허가를 받지 않으면 도경계선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금령이 있었기에 홍랑은 쌍성(지금의 영흥)까지 따라갔다가 울면서 돌아갔다. 이때 홍랑에게 써 준 시이다. 최경창이 함관령에 이르러 한 주막에서 쉬고 있은데 홍랑이 사람을 시켜 비단에 곱게 쓴 시조 한 수를 편지로 보내왔다.


묏버들 갈히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 밖에 심거 두고 보쇼서

밤비에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쇼서


이 시를 최경창은 영원히 전하기 위해 한시로 옮겨 적고 제목을 「번방곡(飜方曲」이라

하여 자신의 문집에 남겼다.

이후 서울로 돌아온 최경찬이 병으로 몸져눕자 홍랑은 국법까지 어겨가면서 7일 낮밤을

걸어 서울로 찾아왔다. 이 일이 빌미가 되어 최경창으 사헌부의 탄핵을 받고 관직에서

파면을 당하기도 했다.

최경창이 죽은 뒤 홍랑은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다율리에 위치한 해주 최씨의 선산으로

달려가 뵤 옆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시뵤를 살았다고 전한다.

이처럼 절개를 지킨 홍랑은 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최경창의 작품을 손수 안전한

곳으로 옮겨 보관해 후세에 남겼다. 이런한 홍랑에게 감동한 최씨 문중에서는 홍랑이

세상을 떠나자 문중 선산에 묻어 주었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