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에게 보낸 수수께끼의 시- 이학규
아내에게 미어체로- 이학규
寄內(기내), 謎語(미어). 『낙하생집(洛河生集)』
染盡黃絲坐未治 (염진황사좌미치) 누렇게 실을 다 물들이고도 괜스레 정리하질 못할
텐데
藁砧長是隔天涯 (고침장시격천애) 볏짚을 깐 다듬잇돌은 오랫동안 하늘 끝 멀리 떨어져
있네.
破衫會有重縫日 (파삼회유중봉일) 찢어진 젓삼은 반드시 다시 기울 날 있으리니
小草終思未出時 (소초종사미출시) 애기풀은 끝내 산을 떠나오기 전을 그리워하네.
石闕口啣書正到 (석궐구함서정도) 돌문을 입에 물렸는데 편지가 때마침 이르렀건만
河魚腹疾夢然疑 (하어복질몽연의) 복어먹고 배가 아파서 꿈인 듯 생시인 듯
居人也設刀環望 (거인야설도환망) 집안 사람들 또한 칼 고리를 희망한다고
錦字空傳幼婦辭 (금자공전유부사) 비단에 짜 넢은 글자는 부질없이 어린 부인의 말을
전하네.
작품해설
이학규는(李學逵. 1770~1835)는 유복자로 태어나 외가에서 자라면서 외주부 이용휴
에게서 성호학파(星湖學派)의 학문을 전수받았다. 정조에게 문사를 인정받았으나 1801년
신유옥사 때 전라도 화순으로 유배갔다가 황사영 백서에 연루되어 경상도 김해로 옮겨져
24년이라는 긴 유배 생활을 하면서 독특한 시문을 남겼다.
황사영은 그의 외종형이었으며 외숙 이가환, 삼종숙 이승훈이 죽었다. 같은 시기에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간 정약용과 오랫동안 편지와 시를 주고 받으며 깊이 사귀기도 하였다.
유배지 에서 어느 날 아내에게 수수께끼 같은 시를 적어 보냈다.
제목에서 미어라고 했듯이, 이 시는 미어체(謎語體)라 일컫는 수수께끼 형식의 시이다.
그래서 표면의 글자 너머에 담긴 이면의 의미, 곧 수수께끼를 풀어 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매 구절에 달린 주석을 보아 가며 시를 다시 읽으면 이렇다.
뒤엉킨 마음을 괜스레 정리하질 못할 텐데
남편은 오랫동안 하늘 끝 멀리 떨어져 있네.
헤어진 우리가 반드시 다시 만날 날 있으리니
먼 곳에서 끝내 떠나오기 전을 그리워하네.
슬픔에 겨워 말문마저 막혔는데 편지가 때마침 이르렀건만
배앓이 하느라 꿈인 듯 생시인 듯,
집안사람들 또한 고향에 돌아오길 희망한다고
당신의 편지는 부질없이 묘한 말을 전하는구려.
이 시가 「인수옥집(因樹屋集)」에 임술년(1802. 32세)작품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이학규가 유배된 다음 해에 쓴 것임을 알 수 있다. 인수옥은 이학규가 자신의 유배지
거처에 부친 이름이다.
평소 부부간의 정이 애틋했던 아내가 이학규가 유배된 지 15년 만인 1815년 서울에서
죽음을 맞았다. 三千大千世界만큼이나 떨어져서 15년이라는 긴 세월을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련 온 아내였다. 남편의 수수께끼 시를 받았던 젊은 아내는 그 세월 동안
아픔 몸을 이끌고 가정을 묵묵히 지켜오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아내는 편지조차
닿을 수 없는 지하고 가소 말았지만 또렷이 떠오르는 나애의 '병들거나 가난하거나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 살자'던 말만 귀에 쟁쟁할 뿐이다.
아내를 애도하며- 이학규
悼亡(도망). 『낙하생집(洛河生集)』
何限豊臺輿月樓 (하한충대여월루) 바람 부는 누대와 달 뜨는 누대에 얼마나 올랐던가?
登臨猶自淚濳流 (등림유자루잠쥬) 오를 때면 여전히 절로 눈물이 가만히 흐르네.
傷心小別三千界 (상심소별삼천계) 마음 아프게 잠깐 헤어진 것이 삼천대천세계요.
屈指相思十五秋 (굴지상사십오추) 손가락 꼽으며 서로 그리워한 것이 15년 세월
地下定無書報恨 (지하정무서보한) 지하에는 정년 이 한을 알릴 편지가 없는데
人間惟有酒銷憂 (인간유유주소우) 이승에는 오직 근심을 풀 술만 있을 뿐이네.
向來一語分朙記 (향래일어분명기) 지금까지도 분명히 기억하는 한 마디 말
長病長貧兩白頭 (장병장빈양백두) "병들고 가난하더라도 함께 늙어가요" 했었지.
남편 이학규가 유배를 간 뒤 병약한 아내는 가난한 집안을 꾸려가면서도 떨어져 있는
괴로움과 헤어져 살게 된 어려움을 조슴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아내가 10년이
지나 수백 줄 되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왓는데, 거기에는 "흰 머리카락은 뽑을 수도 없게
늘어나고, 부드럽던 피부는 쪼그라들어 버렸네요. 이러니 부끄러워 당신을 다시 어찌 볼
것인지요?"라 적혀 있었다고 한다.
유인 정씨 제문. 의제정유인문(擬祭丁孺人文)」중에서.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