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지어 국화꽃 가지에 걸어 놓고 - 박은
시를 지어 국화꽃 가지에 걸어 놓고 - 박은
『읍취헌유고』권2
今宵聊得醒 (금소료득성) 오늘 밤이 되어서야 술이 깼는데
淸月滿空軒 (청울만공헌) 맑은 달빛만 빈 마루에 가득하군
何以逢之子 (하이봉지자) 어떻게 하면 그대를 만나서
胸懷更細論 (흉회갱세론) 가슴속 회포를 다시 가만히 얘기할까?
菊花渾被月 (국화혼피월) 국화는 온통 달빛에 휩싸여
淸絶自無邪 (청절자무사) 청절한 모습 절로 사특함이 없구나.
終夜不能寐 (종야불능매) 밤새도록 그대 잠을 못 이루고서
解添詩課多 (해첨시과다) 시 지을 일 많게 한 줄 알았구려.
心從醒後咬 (심종성후교) 마음이 술 깬 뒤에 밝아졌나니
愁對此君無 (수대차군무) 시름겹게 차군을 대하지나 않았는지?
今夜知淸味 (금야지청미) 오늘 밤에는 맑은 맛을 알 것이니
還須戒酒徒 (환수계주도) 도리어 술 끊은 사람이 와야 하리라.
작품해설
술에 취해 참든 친구의 집 뜰, 활짝 핀 국화꽃 사이에 살며시 시를 꽃아 두고 떠난 이행,
박은이 벗 홍언충과 술을 마시고 집에 돌아오니 또 다른 벗 이행이 흡취헌에 와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불성인 박은이 깨기를 기다리며 새벽까지 국화꽃 앞을 서성이던
벗 이행은 시 한 수를 적어 국화꽃 사이에 꽃아 두고 떠났다. 겨우 정신을 차린 박은이
국화꽃 사이에서 벗이 남긴 시를 찾아 일고 검연쩍은 마음에 그도 시 한 수를 지어 보냈다.
술에 취해 참든 친구의 집 뜰, 활짝 핀 국화꽃 사이에 살며시 시를 꽃아 두고 떠난 이행,
벗이 남긴 시를 읽고서 어제 못 나눈 회포를 이 밤 다시 풀자며 초엉하는 박은, 이 두
사람이 주고받은 아름다움 정경이 국화꽃 향기만큼 그윽하게 전해져 온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