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漢詩 1

초정에게 편지 써서 술 한 병을 빌었네- 이덕무

花雲(화운) 2018. 7. 30. 17:55


긴 노래로 초정자에게 주어 홍주를 보내준 데에 사례함- 이덕무

長歌, 贈楚亭子謝餽紅酒(증초정자사괘홍주). 『아정유고(雅亭遺槁)』



不隨桔槹勤俯仰 (불수길고근부앙)   두레박을 따라 부지런히 올랐다 내렸다 않고

贋詩贋文恥依樣 (안시안문치의양)   거짓 시 거짓 글 본뜨기 부끄러워하네.

口口苦顯漆園語 (구구고현칠원어)   입마다 고현, 칠원의 말이요

心心鴈宕龍湫想 (심심안탕룡추상)   마음마다 안탕 용추의 생각이로세.

茅閣三晨雨聲裏 (모각삼신우성리)   띳집 사흘 새벽 빗소리 속에

腸雷輥輥熾飢火 (장뢰곤곤치기화)   창자가 꼬르륵 배가 몹시 고프네.

迂疏不曉半箇事 (우소불효반개사)   어리석고 졸렬한 사람 반 조각 일도 알지 못하고

自稱李顚學兀坐 (자칭이전학올좌)   이전이라 자칭하며 오뚝이 앉기만을 배웠네.

壞色苧袍馬尾巾 (괴색저포마미건)   낡아 빠진 모시 도포 말총 탕건으로

幽吟永歗刋塵根 (유음영소천진근)   그윽이 읊고 긴 휘파람 불며 진근을 씻네.

隣鼎炊聲越墻殷 (린정취성월장은)   이웃집 밥 짓는 소리 담을 넘어 요란하고

里甕蒭香透簾歕 (리용추향투렴분)   마을의 항아리 술 향기 발를 뚫고 불어오네.

津津何以鎭吟脾 (진진하이진음비)   군침이 질질, 무엇으로 읊는 비위 달래 볼까?

裁書楚亭乞一瓻 (재서초정걸일치)   초정에게 편지 써서 술 한 병을 빌었네.

赧如丹砂出蜀井 (난여단사출촉정)   새빨간 술 빛 촉정에서 나온 단사 같아

滿注不任心熙怡 (만주불임심희이)   잔에 가득 따르니 흐믓한 마음 견디지 못하겠네.


작품해설

백동수는 서얼 출신으로 무과에 급제한 무인인데, 의협심이 대단하고 사람 사귀기를

좋아한 쾌남아였다. 번화한 도회지 서울에서 가난뱅이 선비로 서로 격의 없이 우정을

나누었던 박제가와 백동수는 궁핍한 날의 진정한 벗이었다.

백동수의 처남이자 박제가의 둘도 없는 벗인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역시 참으로

궁핍하였다. 어느 날 박제가가 보내온 홍주를 맛보고서 이덕무가 답례로 쓴 시이다.

구절구절 전고(典故)를 달아 단숨에 읽히지는 않지만, 주린 배에 밥보다 술 생각이 더

간절한 이가 벗에게 얻은 홍주 한 병에 거나해져 한바탕 신세한탄을 늘어놓았다.


대쪽 같은 맑은 성품을 지키며 사느라 가난하기만 하다는 이덕무의 신세타령이다.

띳집 사흘 새벽 빗소리 속에도 유난히 꼬르륵대는 창자 소리, 담 넘어 들려오는 이웃집

밥 짓는 소리에 마음이 동하고 비위가 동한다. 어느 집 술 항아리인지 퍼지는 술 향기

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마침내 벗 박제가에게 술을 청하는 편지를 쓰고야 말았다.

해서 받은 술이 빛깔 붉은 홍주였다. 홍주 몇 잔 마시고 얼큰해져 고맙다는 말 대신에

한바탕 신세타령을 노래하였다.



한시 러브레터. 강혜선

(주)도서출판 북멘토.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