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절로 높이 날고 물 절로 흐르네 - 허응 보우
구름 절로 높이 날고 물 절로 흐르네 - 허응 보우
<登悟道山>
以道名山意欲觀 (이도명산의욕관) 산 이름 '도'라 붙으니 보고 싶어서
杖藜終日苦躋攀 (장려종일고제반) 지팡이 짚고 종일 고생해 올라갔네.
行行忽見山眞面 (행행홀견산진면) 가고 가다가 문득 산의 참 모습 보니
雲自高飛水自湲 (운자고비수자원) 구름 절로 높이 날고 물 절로 흐르네.
虛應 普雨 (1509~1565)
- 조선
- 명종 때 섭정을 하던 문정왕후의 우원을 입어 무너져가는 불교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으며, 그래서 불교중흥의 기틀을 잡았다. 그러나 문정왕후의
죽음과 함께 자신의 목숨도 버려야 했으니 조선 시대에 불교신앙의 순교자인 셈이다.
작품해설
- 이 시는 오도산(悟道山)이라는 이름의 산을 올라가는 이야기이지만 오도산이 실제로
국내 어느 곳에 있는 산인지 확인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다. '도'를 깨
쳐가는 과정과 '도'를 깨친 세계로서 '오도'의 문제를 '등산'에 비유한다는 뜻으로 '오
도'와 '등산'을 합쳐서 '등-오도-산'이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으로 보인다.
- 산을 오르는 것은 학문하는 과정에 비유하여 말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퇴계의 시에도
"독서가 산놀이와 비슷하다 하지마는? 이제 보니 산놀이가 독서와 비슷하구나/ 노력
을 다할 때엔 아래로부터 하며/
얕고 깊음 아는 것도 모두 자기에게 달린 게지/ 일어나는 구름 바라보며 오묘한 이치
알아채고/ 물줄기 근원에 이르러 시초를 깨닫는다네"<讀書如遊山>라고 읊어, 독서
와 등산이 서로 같은 점을 들었다.
- 보우는 '등산'의 과정을 서술하면서 '오도'의 과정을 이에 비유하여 네 단계로 제시
하고 있다. 먼저 첫째 구절은 '도'에 뜻을 두는 '初發心'의 단계를 보여준다. 산에
'도'라는 글자가 들어있어서 그 산이 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어디에 '도'가
있다고 하면 그 '도'에 사람이 이끌리게 되는 것은 바로 '산'이 사람을 오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리라.
- 둘째 구절에서는 '도'를 추구해나가는 '수행'의 실천단계를 보여준다.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지팡이의 도움까지 받으며 온종일 가파른 산길을 땀흘리며 고생스럽게
올라가야 한다. 마친가지로 '도'를 닦는 '수도'의 실천과정은 오랜 고행을 인내로
견뎌내야 함을 보여준다.
- 셋째 구절에서는 '도'의 깨달음이 다가오는 단계를 보여준다. 등산하는 길에는 오랜
시간동안 숲 속에 파묻혀 시야가 가리게 되니 아무 전망도 없을 때가 많다. 그러나
참고 견디며 가고 또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산등성이에 올라설 때 시야가 환하게 열릴
때가 있다. 한 순간에 위로 산마루의 웅장한 모습과 아래로 멀리 계곡 바깥까지 시원
하게 내려다보이는 그 통쾌함을 등산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할 것이다. 이른 '산의
참 모습'이라 하였다.
- '도'를 깨달음도 바로 이와 같다. 오랜 시간 어둠 속에서 암중모색하는 수행의 과정이
계속된 끝에 안목이 툭 터져 시원하게 열리는 순간이 온다. "공자가 동산에 오르니
노나라가 작은 줄 알고,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은 줄 알았다.<『맹자』盡心上>고
말하는 툭 터진 시야를 얻는 것이 바로 등산이요, '도'의 깨달음인 것이다.
- 넷째 구절은 깨우친 '도'의 세계를 보여주는 단계이다. 산마루에 올라서서 보면 아득한
천하 안에 하늘에는 구름이 날고 골짜기에는 냇물이 흐르는 자연의 세계가 장쾌하고
아름답게 비쳐진다. '도'를 깨치고 나서 열리는 세계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바로 우리
가 사는 세계 그대로라는 말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