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면 산마다 구름 피어나고 - 설잠 김시습
새벽이면 산마다 구름 피어나고 - 설잠 김시습
<蓮經讚>
雲起千山曉 (운기천산요) 새벽이면 산마다 구름 피어나고
風高萬木秋 (풍고만목추) 가을이면 나무마다 바람 세구나.
石頭城下泊 (석두성하박) 석두성 아래서 하룻밤 묵는데
浪打釣魚舟 (랑타조어주) 물결은 낚싯배를 철석이며 치네.
雪岑 金時習 (1435~1493)
- 조선
작품해설
- 이 시는 설잠이 『묘법연화경』 곧 『법화경』을 읽고 읋은 찬가인데, 암호를 만난 듯
방향조차 찾을 수 없다. 志安 스님의 선시산책, 『바루 하나로 천가의 밥을 빌며』(계
창, 2008)에서는 이 시를 해설하면서 "법화경의 일승 법문을 가지고 세상 경계를 비유
해 놓은 시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생이 사는 이 세상 모든 경계가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불성이 피운 꽃이 아닐 수 없다"라고 말씀한 지적을 나침반으로 삼아서 이 암호
를 풀기 위해 암중모색을 한 번 해보려고 한다.
- 첫 구절과 둘째 구절은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새벽은 하루의 시작이다. 산골짜기 마
다 구름이 피어오르고 강이나 호수에서는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시작은 충동과 의지
가 눈을 뜨고 꿈과 희망이 분출해 나오는 시간이다.
- 한낮쯤 되면 골짜기에서 피어난 구름은 그 사이에 흩어져버리지 않았다면 산마루를
타고 있거나 하늘 높이 둥실 떠오를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
나는 것"(生也一片浮雲起)이라 하였으니, 아무리 언제 흩어질 지 모르는 허망하기 구
름같은 인생이라도 시작할 때에는 힘차게 꿈을 피워낸다.
- 한 해의 마무리는 가을이다. 쌀쌀한 가을바람이 거세게 나뭇가지를 흔들어 우수수 낙
엽을 떨어뜨리고 있다. 마무리를 재촉하는 시간이다. 낙엽이 지는 가을은 봄에서 시작
했다는 뜻을 이미 그 속에 간직하고 있다.
- 첫 구절과 둘째 구절은 여러 가지로 대조를 이루고 있는 듯하다. 하루의 시작인 아침
과 한 해의 마무리인 가을이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위로 피어오르는 구름과 아래로
낙엽을 떨어뜨리는 바람이 대조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의 사물인 산과 생명체인 나무
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 그 다양한 대조는 모두 양국의 형식이라면, 이 양극들은 서로 대응되고 서로 어울려
하나를 이루고 있눈 것이다.
-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은 하나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석두성은 옛 금릉성으로 중국
남경의 고성이다. 장강 강변의 절벽 위에 자리잡았으니, 뒤에는 한 시대의 서울로 번화
한 도시요, 앞에는 태고를 꾸ㅐ뚫고 흐르는 대하이다. 인간의 복잡한 삶과 유유히 흐르
는 장강의 자연이 살을 맞대고 있는 자리다.
- 또한 피비린내 나는 무수한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와 물결에 흔들리고 있는 한가
로운 낚싯배 하나의 현재가 긴장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바로 설잡이『법화경』을 중
생에서 부처를 보고 번뇌에서 열반을 보는 가르침으로서 찬송하는 노래가 아닐지...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