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 소리 바로 부처님 설법이요 - 동파 소식
냇물 소리 바로 부처님 설법이요 - 동파 소식
<贈東林總長 老>
溪聲便是廣長舌 (계성변시광정설) 냇물 소리 바로 부처님 설법이요.
山色豈非淸淨身 (산색기비청정신) 산 경치 어찌 부처님 법신 아니랴.
夜來八萬四千偈 (야래팔만사천게) 밤새 팔만사천 게송을 들었건만
他日如何擧似人 (타일여하거사인) 다른 날 남들에게 어떻게 알려주랴.
東坡 蘇軾 (1036~1101)
- 宋
작품해설
- 귀가 있다고 누구나 잘 알아듣고, 눈이 있다고 누구나 잘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뜻 없이 흘러가는 소리들, 까닭 없이 스쳐가는 형상들은 세상에 가득 차 있는데
그속에서 의미를 깊고 맛있게 알아듣고 크고 웅장하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육신
의 귀와 눈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귀를 열고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
- 물소리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밖으로는 물이 지닌 이치가 우리를 깨우쳐주는
말을 할 것이다. 공자는 냇가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무심히 바라보다가 "지나가는
것은 이와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구나"라고 한 마디 하였다. 우주의 변화가
쉬임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흐르는 냇물이 말해주는 것을 들으셨던가 보다.
- 단종을 영월에 안치시켜 놓고 돌아오는 금부도사 왕방연은 흐르는 냇물소리를
들으며, "저 물도 내 마음과 같아서 울어 밤길 예누나(가누나)"라고 읊었으니,
자신의 말 못할 감정을 물소리에서 듣고 있는 것이다.
- 물소리가 들리고 산의 경치가 보이는 것은 먼저 자신의 껍질을 벗겨내어야 한다.
귀를 열고 눈을 뜨듯이 자신과 세상을 소통하게 해야 한다. 자기 속에 사로잡히면
아무 말도 제대로 안 들리고 아무 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 인간의 감각기관 중 정신적 기능에서 무제한 열려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 지닌
특성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느끼는
모든 것에서 감각의 세계를 넘어 의미의 세계가 열려 있다. 문제는 우리가 마음의
감각기관을 어떻게 열어주느냐 하는 것이다. 마음의 시각, 마음의 청각, 마음의
후각, 마음의 미각, 마음의 촉각을 여는 공부를 해야 하겠다.
- 마음의 문이 열리면 바로 마음의 감각기관이 열리게 된다. 마음의 문을 열자면
이기적 욕심과 격정의 분노와 짓눌린 어리석음을 깨뜨려야 한다. 마음의 문이
툭 터지고 활짝 열리는 것이 반야(般若)의 지혜가 될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禪詩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