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버려짐은 하늘이 풀어 주심이니 - 담헌 홍대용
세상에서 버려짐은 하늘이 풀어 주심이니- 담헌 홍대용
<乾坤一草亭主人>
棄置固天放 (기치고천방) 세상에서 버려짐은하늘이 풀어주심이니
素心或虛徐 (소심혹허서) 본래 마음이야 채연하지 않겠는가.
憂樂無了時 (우락무료시) 근심과 즐거움 다 할 때 없으니
物性奈如予 (물성내여여) 사물의 본성이야 나와 같지 않으리오.
湛軒 洪大容 (1731~1783)
- 조선
- 18세기 후반 북학파의 실학을 열었던 선구적 인물
- 조선의 도학자들이 주창하던 '숭명배청론'을 깨뜨리고 하늘에서 세상을 보면 중화니
오랑캐니 구별이 없이 제각기 중심을 이루는 것이라는 새로운 의리론을 열었다.
- 또한 서양과학을 받아들여 지구가 둥글고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지구자전설까지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는 혁신적 사상가였다.
- 자신의 지을 '건곤일초정'이라 이름붙이고 시를 지었는데, 시에 붙인 서문에서,
"秋毫(추호)를 크다 하고 태산을 작다함은 장주의 과격한 말이다. 지금 내가 하늘과
땅을 한낱 초정처럼 보니, 나도 장차 장주의 학문을 할 참인가? 30년 동안 성인의
글을 읽었던 내가 어찌 유교에서 도망하여 묵자로 들어가겠는가? 말세에 살며
환란을 겪다보니, 눈의 현란함과 마음의 아픔이 극심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 그는 도학이 주도하는 시대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사회개혁의 방안을
제시하던 실학자였지만, 이미 말기로 접어드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자신의 뜻을 펼쳐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세상에 뜻을 버리면서 장자처럼 무한한 자연 속에서
소요하는 툭 터진 시야를 갖고자 하였다.
- 따라서 이 시의 11-12행에서도 "다툼이 없으니 온갖 비방 면하겠고/ 재주 없으니 헛된
명예 끊었노라"고 읊어 세상에 대함 관심을 버림으로써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는
뜻을 보여주었다.
작품해설
- 홍대용이 지은 「乾坤一草亭主人」 20행 가운데서 마지막 4행이다.
- 첫째 구절에서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뜻을 펼 수 없는 것은 하늘이 자신을
이 세상으로부터 풀어준 것이라 받아들이는 심정을 밝히고 있다. 다만 자신이 '세상을
버린다'는 출세간의 자세와는 달리 '하늫이 풀어주었다'는 세상의 굴레로부터 벗어났다
는 해방감으로 의식의 긍정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둘째 구절에서는 본래 마음이 태연할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본래 마음은 타고난 바탕의
마음이야 편안하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은 여전히 괴롭고 쓰라림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셋째 구절에서는 실제의 마음에서는 근심과 즐거움이 끝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실을
다시 인정하고 있다. 이미 본래 마음을 확인하였으니, 실제 마음 대로 버려두겠다는
것이다. 다만 본래 마음의 편안하고 태연함만 잊지 않는다면 일시적 감정의 동요가
자신을 뿌리 채 흔들어 놓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 넷째 구절에서는 사물의 본성과 나의 본성이 서로 어긋날 것이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는 인간과 사물의 본성이 서로 다르다는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는 입장이지만, 인간과
사물을 상하로 차등화 시키는 인간중심적 관점을 거부하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바로
이점에서 인간과 사물이 평등하다는 가티의 균등성을 중시하는 '人物均論'이라 할 수
있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