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우리 '도'는 이제 끝나버렸나 - 성호 이익
슬프다 우리 '도'는 이제 끝나버렸나 - 성호 이익
<夜吟>
土中有物埋未得 (토중유물매미득) 흙 속에 있는 물건도 매몰될 수 없으니
精光上射爲長虹 (정광상사위장홍) 밝은 빛 쏘아올라긴 무지개 되는데
嗚呼此道今已矣 (오호차도금이의) 슬프다 우리 '도'는 이제 끝나버렸나.
掩券不語憂心忡 (엄권불어우심충) 책을 덮고 말없이 근심 속에 잠기네.
星湖 李瀷 (1681~1763)
- 조선
- 실하파로서 성호학파를 열었으며, 실학자이면서 동시에 성리학자로서도 큰 비중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 실학자 가운데 서양 과학과 천주교 신앙을 포함하는 서학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
했던 최초의 인물이요, 양명학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이 점에서
이익은 조선 후기 가장 큰 사상의 흐름인 주자학. 양명학. 실학. 서학의 여러 물줄기
들을 거둬들여 사상사의 새로운 물줄기를 열고자 시도했던 사상가라 할 수 있다.
- 주자학의 경학. 성리설. 예설을 체계적으로 해석하는 저술을 비롯하여, 퇴계의 학문
체계를 정리한 저술하였으며 서학에 대해서도 서양 과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을 밝히고, 서양 종교의 비합리적 신앙은 비판했지만 윤리사상은 긍정적으로
이해하는 열린 정신을 보여주었다.
작품해설
- 18세기 전반기에 활동하던 시학자 이익이 밤중에 읊은 시 「夜吟」 16행 가운데
마지만 4행이다.
- 위에서 인용한 시의 바로 앞부분인 9-10행에서는 "경전주석에 마음 둔지 십년이
되었건만/ 지금도 암중모색 동서를 분간 못하네"라고 하여, 자신이 경전해석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고 있지만 동서가 관총하는 길을 찾지 못하여 암중모색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동양의 유교전통과 서양의 새로운 학문이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 또한 11-12행에서는 "하물며 천지는 바로 긴 밤중인데/ 의관을 찢고 미친 바람을
따라가누나"라고 하여, 그 시대를 함흑의 시대로 지적하고 전통의 파괴가 일어나는
격변의 국면임을 제하고 있다.
-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에서는 삼국시대 오나라의 장화가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보랏빛 기운이 감도는 곳을 보고 점성가에세 물어서 보검의 빛임을 할고 땅 속에
붇혀있던 보검을 찾았다는 옛 이야기를 끌어들이고 있다. 곧 땅 속에 붇힌 보검도
빛이 나서 드러나는 것임을 '도'와 대조시키고 있다.
- 셋째 구절에서는 우리 '도'가 이제는 끝났다고 탄식한다. 그것은 다음 시대를 내다
보는 선지자의 혜안인지 좌절감에 빠진 유교 지식인의 푸념인지 심각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이익이 왜 유교의 '도'가 망했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려면, 그가 주자학
(도학)과 실학 사이에서 새로운 사상의 방향을 탐색하고 있는 사상가였다는 사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주자학의 '도'는 이미 새 시대로 방향을 이끌어갈 수 있는
기능과 이상과 생명력을 상실하고 죽어버렸으며, 단지 전 시대의 권위와 관습에
얹혀서 떠내려가고 있을 뿐이라 보고 있는 것이다.
- 마지막 구절에서보고있던 책을 덮어놓고 근심에 잠겨 있다고 말한 것은 그 자신
으로서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를 이끌어오던 주자학. 도학의 '도'는 막강한 세력과 권위를 누리면서 너무 비대해져
스스로 성찰하고 개혁하지 못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체질개선의 기회를 잃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도'가 망하게 되는 원인이 아니었을까?
- 이처럼 '도' 곧 진리가 생명력을 잃어 죽기도 하는 사실은 유교만의 일이 아니라
모든 종교가 겪어야 하는 역사적 조건이라 말할 수 있겠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