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오롯이 붙잡아 태허를 보네 - 퇴계 이황
내 마음 오롯이 붙잡아 태허를 보네 - 퇴계 이황
<詠懷, 영회>
獨愛林廬萬券書 (독애임려만권서) 숲 속 오두막 만권 서적을 홀로 좋아해
一般心事十年餘 (일반심사입년여) 십년 남짓 한 가지 마음을 지켜왔노라.
邇來似與源頭會 (이래사여원두회) 요즘 들어 근원자리를 만난 듯한데
都把吾心看太虛 (도파오심간태허) 내 마음 오롯이 붙잡아 태허를 보네.
退溪 李晃 (1501~1570)
- 조선
작품해설
- 퇴계가 19세 때(1519) 자신의 회포를 읊은 시이다. 불교로 말하면 '오도송'(悟道頌)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자신의 학문세계가 툭 터져 열리는 순간을 서술하고 있다.
- 첫째 구절과 둘째 구절은 '도'를 체득하는 과정과 환경을 서술한 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구절에서는 먼저 숲 속의 오두막이라는 공간이 보이고, 첩첩이 쌓여 있는 만권
서적이 보인다. '도'는 없는 곳이 없으니, 장사꾼들이 소리치고 있는 도시의 저잣거리
라고 닦을 수 없는 것이 아니고, 조정의 관리가 앉아 있는 번잡한 사무실이라고 찾을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숲 속을 찾고 있단 말인가.
- 멀리 시끄럽고 어지러운 일상의 인간사에서 벗어나 고요한 숲 속 솔바람과 계곡 물
소리를 멋삼고, 그 속에 한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오두막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퇴계가 찾아가는 구도의 길이 어디를 지향하는 것인지 보여주는 서곡이다.
- 숲 속으로 뻗어 있는 길, 그 길은 분명 도시로 사람들 속으로 뻗어 있는 길과 차이가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겨우 자기 한 몸이나 누일 수 있는 숲 속의 오두막집에
어울리지 않게 만권 서적이 또 하나의 환경적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다.- 어떻든 '숲'과
'책', 이 두 가지는 전혀 이질적이지만 잘 어울릴 수 있는 조건들이다. 퇴계는 '구도'의
길에서 '숲'과 '책', 이 두가지를 두 날개로 삼고 있는 듯이 보인다. '숲'은 인간존재를
감싸고 있는 대상으로서 자연의 세계요, '책'은 인간정신이 만들어 낸 문며의 세계이다.
이 둘은 결코 저절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직 구도자로서 사람이라는 한 몸에 두 날개
처럼 붙어서 서로 보완하고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 구도자인 한 인간에게 '숲'은 공간으로 다가오고 '책'은 시간으로 다가올 수 있다.
이 구도자에게 숲은 물고기에게 물처럼 그 속에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요,
책은 시대마다 흘러나온 성현들의 지혜가 출렁거리고 역사의 경험들이 파도치고 있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 둘째 구절에서 구도자가 등장한다. 이 구도자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마음'과
'세월'이다. 그 마음은 한결같이 변함없는 마음이었고, 이렇게, 저렇게 뒤집히는
마음이 아니다. 그리고 이 일관된 '마음'을 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켜갔다. 곧
마음의 집중과 지속을 '구도'의 길에서 인격적 주체가 갖추어야 할 기본 조건으로
확인하고 있다. 이렇게 '집중'과 '지속'을 안의 주체적 조건으로 삼았을 때, 마침내
어느 순간에 마른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지고 마른 가지에 불이 붙은 깨달음의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 셋째 구절과 넷쩨 구절은 바로 '도'를 터득하는 실상을 그려낸다. 그것은 언제나 주체
로서의 내 '마음'이 객체로서의 '근원자리'와 '만남'이 확인되는 것이요, 내 마음을
확고하게 정립하여 '태허'를 꿰뚫어 봅'이 강조되는 것이라 하겠다. '근원자리'이거나
'태허'는 궁극적 세계계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만남'의 체험이나 '봄'의 인식은 내
마음과 궁극적 세계가 서로 소통하고 일체를 이루는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