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차가워져 재가 되려 하네 - 목은 이색
마음은 차가워져 재가 되려 하네 - 목은 이색
<夜吟>
憂時知起國 (우시지기국) 때를 근심하니 기나라 사람 마음 알겠고
請始有燕臺 (청시유연대) 내가 시작하라니 연나라 대 있음이네.
恰到俱亡處 (흡도구망처) 모두 다 잊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니
心原冷欲灰 (심원냉욕회) 마음은 차가워져 재가 되려 하네.
牧隱 李穡 (1328~1396)
- 고려
작품해설
- 고려 말기 대표적 유학자의 한 사람인 이색이 50세 무렵에 읊은 시 「夜吟」8행에서
뒷부분 4행을 인용한 것이다. 한 나라가 멸망으로 치달아가는 붕괴의 위기에 높여
있을 때 그 사회의 명망 높은 학자요 관료의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뇌하고 있는 사정을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 첫째 구절은 스스로 시대를 염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한 나라 정치의 대세가 이미
그릇되어 돌이킬 수 없이 붕쾨과정에 빠졌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파국을 향해 비정
하게 치달리고 있는데, 이 시대의 명망높은 지식인으로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심정이
오죽했을 것인가?
- 둘째 구절은 주위에서 동지들로부터 자신에게 앞장서서 나서보라는 권유를 받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자신이 나소 본들 이 시대의 대세가 흘러가는 조류를 막아
내고 방향을 틀어볼 힘이 자신에게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 연나라 소왕이 어진 선비를 구하자, 곽외라는 신하가 소왕에게 말씀드렸던 우화를
생각하였다. "옛날에 한 임금이 천금을 주고 천리마를 구해오게 했는데, 심부름을
나간 사람이 오백금을 주고 죽은 천리마 뼈다귀를 사왔다. 임금이 꾸짖자, 그 사람은
죽은 천히마 뼈다귀도 오백금을 주고 샀다는 소문이 퍼지면 살아있는 천리마가
저절로 찾아올 것이라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서 연나라 소왕은
대를 쌓고 곽외를 먼저 스승으로 삼아 융숭하게 대접했더니 천하에서 어진 인재들이
모여들었다"는 이야기이다.
- 그의 고민은 과연 이 죽은 뼈다귀 밖에 안되는 자신의 역할이 파국으로 치달가는
도도한 시대의 물결을 막아내는데 무슨 역할이 있을 지 회의에 빠졌다. 몇 사람의
동지들 밖에는 모두가 자기 실속을 챙기는 데만 급금할 뿐 사회개혁에 나서다가
받을지 모르는 온갖 불이익과 위험을 감당하여 들지 않을 것이라는 실정이 눈에
환하게 보인다.
- 셋째 구절과 넷째 구절은 결국 포기하지 않을 수 없는 좌절감을 보여준다. 아예
나라 걱정을 마음에서 지워버리고 모두 다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토로한다.
이렇게 마음에서 나라와 시대를 모두 잊어버리려고 애쓰자니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서 불 꺼진 재처럼 되고 있는 아픔을 토로하고 있다.
-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놓였을 때, 지식인의 책임감과 불국의 희생정신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詩境 : 漢詩와 道」, 금장태, 한국 한시의 세계
박문사,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