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가 밤낮으로 당돌하게 설치기에 - 이행
쥐가 밤낮으로 당돌하게 설치기에 덫을 놓아 잡아 죽이겠다- 이행
有鼠日夜唐突設機獲而殺之(유서일야당골설기획이살지) 『容齋集용재집』권 5
我飢無食 (아기무식) 나는 굶주려도 먹을 것이 없는데
汝耗我糧 (여모아량) 너는 내 양식을 축냈구나.
我寒無衣 (아한무의) 나는 추워도 입을 옷이 없는데
汝穿我裳 (여천아상) 넌 내 옷을 물어 뜯어놨구나.
天地胡不仁 (천지호불인) 천지는 왜 이다지도 不仁한가.
産此惡物爲人殃 (산차악물위인앙) 이 악물을 낳아서 사람한테 해를 끼치네.
白晝橫行示便黠 (백주횡행시편힐) 대낮에 멋대로 다니는 데다 매우 민첩하니
縱有猫兒安敢當 (종유묘아안감당) 고양이가 있다 한들 어찌 감당하겠나.
我實疾之甚 (아실질지심) 내 너를 정말로 매우 미워하니
汝罪一死亦莫償 (여죄일사역막상) 네 죄는 한 번 죽더라도 갚지 못할 게다.
刳腸碎腦不旋踵 (고장쇄뇌불선종) 순식간에 창자 가르고 뇌를 부수니
誰復按具如張湯 (수부안구여장탕) 장탕처럼 옥사 갖출 이 누가 있겠나.
嗚呼未能殲汝類 (오호미능섬여류) 아! 네놈들 씨를 말릴 수 없어
撫劍起坐涕淋浪 (무검기좌에림랑) 칼 잡고 일어나 앉아 눈물 흘릴뿐.
李荇 (1478~1534)
- 용재(容齋)이행은 연산군의 생모인 페비 윤씨의 복권을 반대했다가 주모자로 지목되어
극형을 당할 처지가 되었다.
- 주모자는 권달수(權達手)였으나 이행은 자신의 죄를 벗으려 하지 않고 말없이 버텼다.
결국 죽도록 얻어맞고 충주로 유배를 갔다가 또 다른 죄를 입어 노비로 떨어져 다시
함안으로 유배 갔다.
- 이때 그의 나이 27세였고 이 시는 그즈음에 지은 것이다.
작품해설
- '나는 굷주려도 먹을 게 없는데, 너는 내 양식을 축냈구나. 나는 추워도 입을 옷이
없는데 너는 내 옷을 물어 뜯어놨구나.' : 시경의 '석서' 편에 나오는 쥐의 이야기이다.
'석서'를 노래한 백성은 나라를 떠났지만 자신의 억울한 처지를 '석서' 편을 빌려 표현
하였다.
- 하늘은 공평한 줄 알았더니 왜 나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는가. 그것으로도 모자라 악인
들은 '대낮에 멋대로 다니는데 매우 민첨하기까지'한가. 분총이 터져서 죽을 지경이다.
- 그래서 쥐덫을 놓아 잡아 죽이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분노를 삭이려 덫에 걸린 쥐를
'순식간에 창자를 가르고 뇌를 부쉬'버렸다. 정말 과격한 표현이다.
- 고문을 당하고 유배 온 것만도 억울한데 신분까지 노비로 떨어졌다. 쥐한테 분풀이를
했지만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든 놈들은 살아있기 때문에 화가 가라앉지 않는다.
- 더 아픈 것은 무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 네놈들 씨를 말릴 수 없어,
칼 잡고 일어나 앉아 눈물 흘릴 뿐'이다.
- 시에 나오는 '張湯'은 중국 한나라 때의 사람이다. 아버지가 외출한 사이 집을 지키고
있던 중 쥐가 나타나서 고기를 먹어버렸다. 아버지는 장탕이 고기를 먹은 줄 알고 매질
을 했다. 장탕은 땅을 파 뒤져서 쥐가 먹다 남은 고기를 찾아내서는 쥐의 죄를 밝히는
글을 쓰고 감옥에서 쓰는 형구를 갖추어서 쥐를 찢어 죽여 버렸다.
- 이러한 고시를 집어넣어 시를 더 풍성하게 해 놓았다.
- 이행은 29세까지 노비생활을 했다. 압송해서 죽을 때까지 곤장을 치라는 명령이 내려와
목숨을 부지할 수 없게 되었으나 다행히 中宗反正이 일어나 복직되었다.
- 이후 간신 金安老을 탄핵했다가 죄를 얻어 평안도 함종(咸終)으로 유배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 이행은 이 시의 기세처럼 강직하고 청렴한 재상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碩鼠碩鼠 (석서석서) 큰 쥐야 큰 쥐야.
無食我黍 (무식아서) 내 기장을 먹지마라.
三歲貫女 (삼세관여) 삼 년 동안이나 괴롭히고도
莫我肯顧 (막아긍고) 나를 뵈주지 않네."
「詩經」「魏風,위풍」 '碩鼠'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 김재욱 지음. 物·四
왕의 서재.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