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詩/화운의 詩 6
할머니의 항아리
花雲(화운)
2015. 3. 11. 10:04
할머니의 항아리
이사를 하다가 항아리를 깨뜨렸다
할머니가 시집 올 때 가지고 와서
어머니가 물려받아 내내 쓰다가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갈 때
둘 데 없어 쫓겨나듯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던 것
베란다 구석에서 눈길 한 번 받지 못하고
수십 년을 빈 몸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한때는 된장을 담고
철철 넘치게 동치미도 담고
막걸리를 담아 농사일에 흥을 돋워 주었으련만
도시 한복판 먼지만 뒤집어쓰던 세월 끝에
떠나왔던 고향으로 다시금 돌아가는 날
삭을 대로 삭은 정에 지쳐버렸는지
그만 무심한 손길에 부서지고 말았다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안고
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를 채우다가
입양 가듯 아파트로 옮겨 가서
한구석 낯선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항아리
늦게나마 고향의 양지 바른 뜰에서
제자리 찾아 안주하지도 못하고
할머니 곁으로 아주 가버리고 말았다
201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