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화운) 2011. 7. 20. 00:30

 

야시 / 이병기 [1891~1968 전북 익산]

 


날마다, 날마다, 해만 어슬어슬 지면,

종로판에서 싸구려, 싸구려소리 나누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 골목, 저 골목으로.

갓 쓴 이, 벙거지 쓴 이, 쪽진 이, 깎은 이, 어중이떠중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흥성스럽게 오락가락한다.

높드란 간판 달은 납작한 기와집, 퀘퀘히 쌓인 먼지 속에,

묵은 갓망건, 족도리, 청홍실붙이, 어릿가게, 여중가리, 양화,

왜화붙이, 썩은 비읏, 쩔은 굴비, 무른 과일, 푸른 푸성귀부터

시든 푸성귀까지.

“십 전, 이십 전, 싸구려 싸구려” 부르나니, 밤이 깊도록, 목이 메도록.

 

저 남산 골목에 우뚝우뚝 솟은 새 집들을 보라.

몇 해 전 조고마한 가게들 아니더냐?

어찌하여 밤마다 싸구려 소리만 외치느냐?

그나마 찬 바람만 나면 군밤 장사로 옮기려 하느냐?

 

 

[문장사 ‘가람시조집’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