花雲의 배움터/詩와의 동행

4계가 말하는 것/ 신동훈

花雲(화운) 2009. 7. 5. 13:02


4계(四季)가 말하는 것/  신동훈

 

 

흰 바람과 허무의 벼랑을 건너

마침내

생의 진실을 깨달은 나무들이

긴 침묵을 열고

온 천지 간에 꽃등촉을 켜기 시작한다

 

여름

생을 어찌 법열로 취한듯만 살겠나

산다는 건 소나무 등껍질의 거친 감촉을 만지는 것

남은 일은 청보리밭 바람 파도처럼 

쏴~ 평등하게 불어가고 더불어 흔들리며 돌아가는 일

수행자가 돌아와 시장 인파 속에 머무는 까닭 아닌가

 

가을

시장 한 켠에 돌절구처럼 비스듬히 앉았으니  

어지러운 세상사 모두 비우고 고요히 선정(禪定)에 드는 것

깊은 산 외딴 산모롱이 길을 가는 돌 중 같아라

보리수 아래 열흘이 지나도록

일어나지 않고 명상에 들던 그 노인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겨울

진실의 문은 꽝꽝 얼어 언제나 보이지 않는 것

마음의 눈을 떠

내달리며 지르는 얼음 강물의 투명한 웃음소리와

지,따,징,

천지 간 울려 퍼지는 쇠북(鐘)소리를 들어야 하지 않겠나

 

온 천지는

수만년이 넘도록 이 땅에 계절이란 사제(司祭)를 내보내어

나고 죽는 무상한 이치를 말하고 있다

강물은 그 감동으로 소리지르며 벌판을 내달리고

정죄(淨罪)와 기도의 시간은 실로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무슨 귀신에 홀린 수캐처럼 이러히 헐떡대며 살아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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